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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제목
    구고서원(九皐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돈암 서한정을 배향한 서원이다. 조선 고종 때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구고서당이라는 현판으로 바꿔 달았으며, 서원 복설을 하지는 못했으나 현재 사당인 상절사를 세덕사로 삼아 춘추로 향사를 이어오고 있다. 당초 이웃 마을인 구구리 도인봉 아래에 건립되었으나 훼철 이후 퇴락해지자 종택이 있는 새내로 남은 건물만을 옮겨 세웠다. 구고서원 현판과 여러 부속건물의 현판은 책실에 보관했다가 근래 소수박물관에 위탁해 보존하고 있다.
  • 제목
    돈암정(遯菴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돈암정(遯菴亭)은 경상북도 영주시 사천리(沙川里)에 있다. 진사 서한정(徐翰廷)이 세워 은거하던 처소로, 20세기 초에 후손이 다시 세웠다. 당시는 마을 안쪽의 정자를 중심으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 있어서 마치 뭇별들이 정자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듯이 배치되었다고 한다.
  • 제목
    도강서당(道岡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구한말의 독립운동가이며 영주 지역 대표적 유학자였던 정산(貞山) 김동진(金東鎭, 1867~1952)이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상량문이 없어 구체적인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다.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측에 온돌방을 꾸몄다. 건물 사면에는 폭이 좁은 쪽마루를 깔아 돌렸으며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이었다. 서당 뒤에는 김동진의 묘역이 있다.
  • 제목
    첨모당(瞻慕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첨모당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창원황씨 집성촌 안쪽에 있다. 본래 세종 때 황전(黃?)이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였다. 선조들의 학덕과 업적을 우러러 사모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강학을 하던 강당이다. 1538년에 고택을 중수하여 첨모당이라 현판을 걸었다. 첨모당은 숭보사(崇報祠) 우측으로 한 단 낮은 곳의 방형토장 안에 건립되었으며, 좌측담에 세워진 낮은 일각문을 통하여 출입할 수 있다. 경사진 대지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기단을 조금 높게 조성한 후 남향으로 앉혔다.
  • 제목
    첨모정(瞻慕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첨모정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丹山面) 병산리(屛山里)에 있으며 첨모당(瞻慕堂)의 주인을 기려 후손들이 종문의 단합과 풍류를 위해 지은 정자이다. 첨모의 뜻이 우러러 사모함이니, 이 역시 옛사람의 덕망을 우러러 그리워하며 오늘을 살고자 하는 바람으로 지은 것이다. 강학을 하던 첨모당과 다른 쓰임새를 지녔으나 선인의 공덕을 우러러 그리워하는 마음은 같아 정자 이름도 첨모정이라 했다.
  • 제목
    이산서원(伊山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산서원은 1558년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원리(지금의 휴천 1동)에 군수 안상이 창건하였다. 1572년에 사당을 세워 퇴계 이황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1574년에 사액을 받아 사학기관이 되었다. 1614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1936년에 경지당만 복원하였다.
  • 제목
    만취당(晩翠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만취당(晩翠堂)은 증좌승지 김개국(金盖國)이 1587년(선조 20)에 건립하였다.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석포면 석포교를 지나 왼쪽 소로길을 따라 약 2km 쯤 가면 우금촌의 두암고택이 나타난다. 다시 논길로 500m 쯤 가면 넓은 들과 산을 등진 만취당을 만날 수 있다. 정자에 앉아 보면 우측으로는 내성천이 봉화 쪽에서 흐르고, 좌측으로는 재사가 고풍스럽게 자리하고 있다. 주위에는 산이 에워 두르고, 물은 감돌아 산경수색이 안석에 오는 듯하며, 당의 이름은 주변의 솔숲과 더불어 그 풍취를 완상하는데 마음에서 얻어 경치에 붙인 것이라 하겠다.
  • 제목
    연안김씨 괴헌고택(延安金氏 槐軒古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마을에 자리 잡은 연안김씨 괴헌고택은 조선시대 순조 때의 선비 괴헌 김영의 집이다. 김영은 1804년(순조 4)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부정자·사헌부 지평 등을 지냈다. 이 집은 김영이 그의 부친 김경집에게서 분가할 때 물려받았는데, 그 뒤 1904년(고종 41) 김영의 증손 김복연이 일부 중수를 했다. 그러나 1972년 수해로 口자 정침 앞의 왼쪽에 있던 외당(外堂)인 월은정과 오른쪽에 있던 행랑채 8칸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 후 2004년 봄에 행랑채와 담은 다시 둘렀으나 월은정은 복원하지 못했다.
  • 제목
    선성김씨 두암고택(宣城金氏 斗巖古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선성김씨 두암고택은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우금에 위치한다. 한성부 서윤을 지낸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1571~1639)의 옛집이다. 선성김씨 두암고택은 정침과 사랑이 口자를 이루고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4칸 마루와 2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는 함집당이, 只자형 정침을 중앙에 두고 그 오른쪽에는 정면 3칸의 사당이 있다.
  • 제목
    천운정(天雲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천운정(天雲亭)은 참판인 백암(栢巖) 김륵(金?, 1540~1616)이 건립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김륵이 처음 구학정에서 거처하다가 읍성이 가까워 번잡하다고 하여, 이 천운정에서 만년을 보냈다고 한다. 산을 등지고 전면에 넓은 논을 마주하며,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 아담한 분위기의 조용한 정자이다. 2남인 도사 김지선(金止善)에게 세수(世守)하게 했다. 자서시(自敍詩)와 약포(藥圃) 정탁(鄭琢) 외 16편의 시가 있다.
  • 제목
    영천이씨 농암종택(永川李氏 聾巖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농암종택은 낙동강 상류 청량산 자락,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신비의 명산 청량산을 지나서 가송리의 협곡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예로부터 낙동강 700리 가운데 마을 앞에는 강과 바위, 그리고 은빛 모래사장의 강변이 매우 조화롭게 어울려 있어, 이른바 ‘도산 9곡’의 진면목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아름다운 소나무가 자라는 마을’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가송리’는 그 이름처럼 산과 강의 정경을 한꺼번에 만끽할 수 있는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곳이다. 안동댐의 수몰로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던 분천마을에서 떠나온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이 농암종택의 본채를 다시 짓고 긍구당을 옮겨 놓았다. 이제 이곳은 분강촌이라 이름 붙여져 있으며, 누구나 방문하여 종택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 제목
    고산정(孤山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은 정유재란 시 안동 수성장으로 활약한 성성재 금난수의 정자이다. 기록에 따르면 금난수 35세 되던 1564년(명종 19)에 당시 선성현의 명승지였던 가송협에 짓고 일동정사라 부르며 늘 경전을 가까이 한 채 유유자적하였다 한다. 고산정은 안동 팔경의 하나인 가송협의 절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주위에는 외병산과 내병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낙동강의 상류인 가송협 건너에는 소나무 숲과 함께 독산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처음 세울 당시부터 예안지방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도 누차 문인들과 함께 와서 시를 지으며 즐겼다고 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잘 어울리게 조성한 조선시대 정자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건물도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 제목
    월천서당(月川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은 월천 조목이 1539(중종 34)에 세워서 학생을 지도하고 공부하던 서당이다. 현판은 퇴계 이황선생이 썼다. 강가의 마을 뒤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흙담을 집에 가깝게 두른, ‘일(一)’자형 목조단층 기와집으로 중앙에는 마루를 두고 좌·우에 방을 배치한 홑처마집이다. 대청의 좌측 방 북벽에 감실이 고미다락처럼 구성되어 있다. 신위를 봉안하게된 것이다. 가난한 선비가 가묘를 모시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던 법도이다. 월천은 이황의 제자이며 원래 벼슬에 뜻이 없어 45차례에 걸쳐 왕명이 내려졌으나 대부분은 나아가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을 모집, 동생과 두 아들들과 더불어 곽재우와 합세하여 국난극복에 앞장섰다. 이황의 제자 가운데 1615년(광해군 7) 유일하게 도산서원 상덕사에 함께 모셔졌다.
  • 제목
    애일당(愛日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은 조선 중종 때 문신이며 학자인 농암 이현보의 별당 건물이다. 1512년(중종 7)에 이현보의 나이 46세 때 94세의 부친과 92세의 숙부, 82세의 사정 김집 등을 중심으로 한 구로회를 만들고, 늙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경로당을 지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늙어감을 아쉬워하여 하루하루를 아낀다는 뜻에서 애일당이라 이름 붙였다 한다. 1548년(명종 3)에 중창하였다 하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다시 세운 것이다. 그 후 안동댐 건설로 1975년 원래의 위치에서 서쪽으로 1㎞쯤 떨어진 영지산 남쪽 기슭인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뒤쪽 열 양옆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두고 가운데 2칸과 앞 열 4칸은 모두 대청마루로 꾸몄다.
  • 제목
    마곡서당(磨谷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마곡서당은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에 자리하고 있다. 1602년(선조 32)에 사림들의 공론으로 변계손을 비롯한 일곱 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서원이다. 예전엔 규모가 큰 서원이었지만, 대원군 시절 서원철폐령 때문에 지금은 주위에 낮은 담이 둘러진 작은 건물 하나만 남아 있다. 그리고 현판들이 상당히 많이 걸려 있는데, 이는 없어진 나머지 건물의 현판을 옮겨놓은 것이라고 한다. 마곡서당이 있는 녹전면 사신리에는 사신리 느티나무가 유명하다. 나무의 나이가 오래되고 주위는 거의 그늘로 덮일 정도로 넓다.
  • 제목
    예안향교(禮安鄕校)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예안향교는 예안현의 공립학교로 건물은 1420년(세종 2)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1541년(명종 2)에 처음 고쳐지었으며, 1601년(선조 24)에 크게 수리하였다.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다시 지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으로 약간 틀어서 배치되어 있다. 병렬 축으로 왼쪽의 높은 곳에 대성전을 두었으며, 명륜당 앞에는 동재·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명륜당의 왼쪽에 고직사가 있고, 그 뒤쪽에 전사청이 있다. 대성전은 정문과 협문을 갖추었고 맞배지붕 건물로 공자를 비롯한 한국과 중국의 성현들을 봉향하고 있다. 대개 명륜당과 대성전은 앞뒤에 나란히 배치되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명륜당이 왼쪽으로 비켜서 있는 점이 특이하다. 조선 초기 건축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는 형식을 보여주는 등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문화재이다.
  • 제목
    선성현 아문(宣城縣 衙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선성현 아문이 자리하고 있는 예안은 현재 안동시에 딸린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이지만, 조선시대에는 독립된 현이었다. 특히 이곳은 퇴계 이황이 탄생한 이후 유교 문화의 중심지로서 더욱 주목 받은 고을이었다. 예안은 본래 고구려 때는 매곡현, 신라 때는 선곡현이었다가 고려 태조 당시 성주로 있던 이능선이란 사람이 군사를 일으켜 도운 공로로 선성으로 고쳐 군으로 승격되어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다 조선시대 고종 때에 예안군으로 바뀌었다. 선성현 아문은 옛 선성현의 관아이다. 현재 남겨진 건물을 보면 ‘선성현아문’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솟을대문을 거쳐 들어가면 부속 건물인 장박당과 중심 건물이자 예전 현감의 집무실이었던 근민당이 자리하고 있다. 일제시대 이래로 행정기관으로 사용되어 문과 창의 왜곡과 부재의 훼손이 심한 편이다.
  • 제목
    한국국학진흥원(韓國國學振興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한국국학진흥원은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의 안동호를 굽어 보는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도난과 훼손으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 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 및 연구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이다. 1995년 출범하여 2001년 본관인 홍익의 집이 개관하였고, 2004년에 유교문화박물관과 장판각이 건축되었고, 2005년 생활관 공사가 착공되었다. 기록문화가 중심이 되는 국학자료의 수집과 보존, 한국유학사상대계 등 다양한 연구, 국내외 학술교류, 문중유물의 상설 및 기획 전시, 국역자 양성 등 교육연수, 국학자료 디지털화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문화의 자긍심과 역량을 세계로 이어주는 국학연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 제목
    진성이씨 노송정종택(眞城李氏 老松亭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은 도산서원을 지나 고개를 넘어 온혜, 이름 그대로 따뜻한 냇물인 온천이 터져 나온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교 쪽을 따라 가다보면 늙은 소나무 사이로 종택의 모습이 보인다. 1454년(단종 2)에 퇴계 이황의 할아버지인 이계양이 건립하였다고 전하는 집이다. 당호인 ‘퇴계태실’은 몸채 중앙에 자리한 튀어나온 방에서 퇴계 이황이 태어난 데서 비롯되었지만, 건물 전체의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 이계양의 호를 따라 노송정종택이라 부른다. 14대손인 이가원에 의해 중수되었고, 1930년대 전면 개축이 있었다. 몸채는 정면 7칸, 측면 6칸이며 안동의 전형적인 사대부집의 형태인 口자형으로 중앙에 퇴계태실이 있다. 몸채 동쪽으로는 一자형으로 독립해서 세워진 노송정이 있고 사당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시대 사대부집의 형태를 갖추었다.
  • 제목
    취규정(翠?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취규정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용담 임흘을 기린 정자이다. 임흘의 본관은 풍천으로, 호는 용담 또는 나부산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막았으나, 패하여 김해의 의진에서 군사를 다시 모아 왜적에 대항하였다. 만년에 예안 온혜에 은거하였다.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도산온천을 지나 용수사로 가는 곳에 매정이 있고, 오른쪽에 취규정이 있다. 원래 봉화 용담에 있던 것을 1991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취규정은 팔작지붕에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전면 반 칸에는 툇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돌렸다. 마루와 전면 툇마루 사이에는 들문을 설치하여 공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만들었다. 전면은 두리기둥을 사용하였으며 가운데와 뒤편 기둥에는 각기둥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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