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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멀티미디어유물관 : 2,005건
  • 제목
    동방록(同房錄)
    발급자
    안동권씨 화산종가
    발급년
    1481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성종 12년(1481) 권주(權柱)가 성균관의 동학 이창수(李昌壽) 등 13명과 함께 우의를 다지기 위해 시를 쓰고 성명·본관·거주지를 적은 서첩이다. 당시 이 서책은 장안의 화제가 되어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베껴가는 바람에 한양의 종이 값이 올라갔다는 일화가 있다.
  • 제목
    오계서원
    발급년
    1692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570년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이 후학을 양성하고자 안동시 녹전면에 세운 서원이다. 원래 이름은 오계정사였는데,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가 이덕홍의 큰아들 선오당 이시(李蒔)가 오계서당으로 재건하였다. 그 후 영천(榮川) 사림의 공론에 따라 오계서원으로 승격되었고, 현재 위치인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로 이전되었다. 현판의 글씨는 김종제(金宗濟)가 썼다고 전해진다.
  • 제목
    입도문(入道門)
    발급년
    1692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오계서원 정문에 걸려 있던 현판이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이가 도학(道學)으로 들어서는 문이라는 뜻이다.
  • 제목
    애일당구경첩(愛日堂具慶帖)
    발급자
    영천이씨 농암종택
    발급년
    1508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농암 이현보 종손가에 소장된 시화첩으로 상,하 2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책은 「한강음전도」, 「화산양로연도」, 「분천헌연도」등 3편의 그림이 있고, 그림 아래에 당시 명신들이 주인공 이현보를 전송하면서 쓴 시들이 있다. 하책은 1519년 안동부사로 재직하던 이현보가 관내 노인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면서 지은 「화산양로연시」와 「애일당시」가 있다. 거기에 당시 경향의 명사들이 운을 맞추어 화답한 시들도 첨부되어 있다. 그 중엔 김안국, 이장곤 등 40인의 송축시가 있고 남곤의 자필시도 들어있다.
  • 제목
    부경별장
    발급자
    안동김씨 봉화 구전종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구전 김중청(1567-1629)이 1614년(광해군6) 4월에 천추사 겸 사은사의 서장관이 되어 중국 북경으로 떠나게 되자 조야의 지인들이 친필로 써 준 전별 시첩이다. 원래 상하 2첩으로 장첩되어 있었으나 나중에 상중하 3책으로 새로 장정했다. 시의 형식은 5언 더러는 7언의 장편시와 단율시, 간혹 절구에다 서문을 겸했다. 본인의 발문에 의하면 '천리 밖의 면목으로 삼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 한다. 심희수·이호민·류근·김상헌 등 당대를 주름잡던 명인의 글씨도 상당수 실려 있어 조선중기 서예의 양상과 사대부의 사회상을 살피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제목
    문방책가도(文房冊架圖)
    발급년
    조선말기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책가도(冊架圖)는 주로 선비의 사랑방을 장식한 그림 병풍이다. 책가도에는 원래 학문을 숭상하는 선비의 정신 세계가 담겨 있었지만, 나중에는 갈수록 부귀영화의 상징물로 채워져갔다.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과일류와 재액(災厄)을 떨친다는 의미의 기물들, 그리고 선비들의 방에서 볼 수 있는 일상용품들이 정감 있고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 제목
    도장(圖章)
    발급자
    무안박씨 고은문고
    발급년
    조선시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인장은 청송 무안박씨 가에서 기탁한 것으로 봉함인과 장서인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둥근 목인은 봉함인인데 판독하기 어려운 구첩전에 속하는 상방대전으로 배자는 방사선식이며 문자는 원주로 향하여 머리를 두고 있다. 네모진 목인은 장서인으로 '면성박모장'이라 새겨져 있는데 상단부에 태극문양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목인장의 재료로 회양목, 배나무 등 결이 고운 것을 많이 사용하였다.
  • 제목
    흥정당친정도(興政堂親政圖)
    발급자
    의성김씨 지촌종택
    발급년
    1691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궁궐과 산수를 그린 8폭 병풍이다. 친정(親政)이란 임금이 주관하는 인사행정 절차를 뜻하는데, 친정이 끝나면 참가했던 관원들은 이를 기념하는 그림을 그려 병풍으로 만들었다. 이 흥정당친정도는 숙종17년(1691) 2월 21일 경희궁(慶喜宮) 흥정당(興政堂)에서 진행된 인사행정을 마치고 제작한 8폭 병풍이다. 제1첩과 제8첩에는 인사행정에 관한 기록화를 그렸고, 제2첩에서 제7첩까지는 산수화를 그려 넣었다.
  • 제목
    상대계첩
    발급자
    안동권씨 화산종가
    발급년
    1633년경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상대계첩은 사헌부(司憲府) 감찰 관원들이 만든 기록물이다. 상대(霜臺)란 '서릿발처럼 엄정하게 감찰하는 관청'이라는 뜻으로, 사헌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헌부에서는 신임관원이 선배관원들에게 신참례(新參禮)라는 신고식을 치르는 관행이 있었다. 이때 신임관원은 술자리를 대접하고 그 모임을 기념하는 계첩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상대계첩이다. 그 취지는 서로의 만남을 기념하고 세월이 흐른 뒤에도 함께 근무한 근거로 남겨 두기 위한 것이었다.
  • 제목
    종남동호회제명록(終南同道會題名錄)
    발급자
    안동권씨 화산종가
    발급년
    1656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서화첩은 효종6년(1656)년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던 영남(嶺南) 출신의 관원 12명이 모임(同道會)을 갖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종남(終南)은 '남산의 끝자락'이라는 뜻으로, 이 모임 장소가 남산 인근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림에는 나무와 인물, 배경 산수 등이 매우 간략한 형태로 그려져 있다. 이런 서화첩은 족자보다 감상하기가 쉽고 제작비용이 저렴하여, 임진왜란 이후 많이 제작되었다.
  • 제목
    남향자첩(南鄕子帖)
    발급자
    안동권씨 화산종가
    발급년
    1503년경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비단에 먹으로 그린 산수화 한 장을 화첩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이 산수화는 강을 중심으로 가까운 곳의 언덕과 폭포, 먼 곳의 넓은 산, 그리고 중간의 모래 언덕이 넓은 공간감을 이루며 전개되어 있다. 구도와 화법 등에서 16세기의 산수화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들이 확인된다. 화첩 뒷면의 기록에 따르면, 이 화첩은 연산군9년(1503년) 권주가 경상도관찰사로 안동을 순시할 때 안동의 백성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 제목
    공자행교상(孔子行敎像)
    발급자
    안동김씨 봉화 구전종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유교의 시조로 추앙받는 공자의 영정으로 1614년 김중청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구해 온 것이다. 좌정하여 설교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척본에 금분을 입혀 매우 신성한 느낌을 준다. 그림 상단에는 '이전의 성인보다 뛰어나서 모든 임금의 사표가 되었고, 우리 유학의 법도가 되어 만세토록 더욱 창성하네.(度越前聖, 師表百王. 綱維斯道, 萬歲彌昌.)'라는 화제가 적혀있다. 김중청의 구미당 종가에서는 이 영정을 '선성영정각'이란 건물에 별도로 모시고 있었다. 널리 알려진 오도자의 공자행교상과는 화면의 구성이나 기법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제목
    화산양로연도(花山養老燕圖)
    발급자
    영천이씨 농암종택
    발급년
    1519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그림은 농암 종가에 소장된 『애일당구경첩』에 수록되어 있다. 이현보가 안동부사로 재직하던 중종 14년(1519) 가을 안동의 80세 이상 노인들을 관아로 초청하여 성대한 양로연(養老宴)을 베풀었는데, 이 그림은 그 날의 연회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자리에는 이현보의 부모 뿐 아니라 사족(士族)과 천민(賤民)의 부모까지 참석하게 했다. 여기에서 신분을 불문한 이현보의 숭고한 경로(敬老) 의식을 엿볼 수 있다.
  • 제목
    분천헌연도
    발급자
    영천이씨 농암종택
    발급년
    1526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분천헌연도(汾川獻燕圖) 중종21년(1526) 이현보가 고향인 안동 분천(汾川)에 내려와 부모의 생신 잔치를 열었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때 이현보의 나이는 60세였다. 연회는 분강변과 애일당(愛日堂)이 있는 언덕 위에서 베풀어졌는데, 그 뒤편으로는 안동댐 아래로 수몰된 이현보의 옛 종택과 영지산(靈芝山)이 충실한 실경산수화(實景山水畵)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 제목
    한강음전도(漢江飮餞圖)
    발급자
    영천이씨 농암종택
    발급년
    1508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중종3년(1508) 가을, 영천(永川) 군수로 떠나는 이현보를 전송하기 위해 동료 선비들이 마련한 송별 연회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이현보의 종가에 소장된 『애일당구경첩』에 15편의 송축시(頌祝詩)와 함께 묶여 있다. 당시 송별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문집을 찾아보면, 이날의 연회는 한강변의 제천정(濟川亭)에서 이루어졌다. 이 그림에는 한강과 그 건너편의 강남 일대가 넓게 조망된 장면이 잘 그려져 있다.
  • 제목
    군자정(君子亭)
    발급자
    영천이씨 오계서원
    발급년
    1570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오계서원의 정자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군자정은 이덕홍이 세워 공부하던 곳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과 네 칸의 대청, 두 칸의 협실을 둔 조선 중기 전형적인 정자이다.
  • 제목
    도존사(道存祠)
    발급년
    18세기경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오계서원의 사당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서원의 설립자 이덕홍과 중건자인 이덕홍의 큰아들 이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제목
    영모암(永慕庵)
    발급년
    18세기경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조선중기의 학자 이덕홍(1541-1596)의 묘소 수호를 위해 건립한 재사의 편액으로 건물은 안동 녹전에 위치한다. 간재 이덕홍은 이황의 문인으로 스승의 명으로 선기옥형을 제작하였고 스승 임종시에는 서적을 관리하라는 부탁을 받았던 인물이다. 글씨는 날렵한 흘림으로 시원스럽고 편안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미남궁체의 행서인데 조선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저명한 해사 김성근(1835-1919)이 썼다. 간재의 후손 이세강이 쓴 「영모암기」에는 "이 재실의 편액을 영모라 함은 조상을 추모하고 태어난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고 하였다.
  • 제목
    선오당(善迂堂)
    발급년
    18세기경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현판은 간재 이덕홍의 아들 이시(1569-1636)의 호에서 유래한 당호인데 건물은 일반적으로 간재종택이라 부른다. 이시는 정구의 문인으로 일찍 과거를 포기하고 가학을 계승했다. 당시 대북파에 가담한 아우를 깨우치기 위해 「오로가」와 「조후풍가」시조 2수를 지어 처신을 삼가하여 더러운 권세에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편액의 글씨는 획이 안정되고 튼실하여 믿음직스럽고 꼿꼿한 느낌을 주는 해서체로 선비의 단아한 모습을 연상시키는 수작이다. '선오'란 세상 물정에 매우 어둡다는 뜻으로 역설적이면서도 반어적인 표현이다.
  • 제목
    험위료(驗爲寮)
    발급년
    18세기경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오계서원의 서재(西齋)에 걸려있던 현판이다. 주희가 쓴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에서 '일이 이르러 이에 응하게 되면 곧 실천에서 증험하라(事至斯應則驗于爲)'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실제 생활에서 배운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을 이 현판에 담은 것이다. 이 현판은 한석봉이 직접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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