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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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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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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의 글을 쓴 서판이다. 글의 제목은 「기로소에 들면서 기로소에 계신 여러 노선생님들께 바치는 시와 서문(耆老篇. 奉呈本所諸老生?前, 幷序.)」이다. 즉 정탁은 말년에 기로소에 들게 되었는데, 그때의 감회를 글과 시로 쓴 것이다.
정탁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곽재우를 천거하여 이순신을 변호하여 전쟁에서 승전을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심지어 정유재란 때에는 우의정의 신분으로 70세의 노구를 이끌고 전투에 참전하려고까지 하였다. 정탁은 왜란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일신을 아끼지 않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진정한 충신이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그를 기로소에 모시는 예우를 하였다. 그는 중국의 문언박(文言博)과 사마광(司馬光)이 조직한 문인회(文人會)인 난정수계(蘭亭修?)를 기로소에 비교하면서, 덕이 부족한 자신이 조정의 은덕으로 기로소에 들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고 있다. 아울러 전란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속히 백성을 도탄에서 구제해야 한다고 탄식하고 있다.
중국의 대사상가 주희(朱熹: 1130~1200)의 글씨를 목판에 쓴 현판이다. 주희는 북송(北宋)의 사상을 집대성하여, 이른바 주자학이라는 거대한 사상 체계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이 현판은 주희의 글씨 ‘누대소명(樓臺昭明)’을 그대로 본떠 쓴 것이다. 누대란 본래 누각(樓閣)과 대사(臺?) 등의 높은 건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누대는 인간의 마음, 즉 지고한 정신 능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현판의 의미는 항상 마음을 밝게 빛나도록 간직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현판은 풍기진씨 문중에서 기탁한 것이다. 풍기진씨는, 고려 후기 큰 선비 진중길(秦中吉, 1308~?)이 세운 행정(杏亭)이라는 정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문이다.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이 세운 겸암정사(謙?精舍)의 현판이다. 겸암정사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37번지에 위치하고 있고, 건물은 중층누각식(重層樓閣式)의 팔작집으로 지어져 있다. 현재 중요민속자료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류운룡은 이황의 선생의 문인으로 안동현감을 거쳐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에 사복시(司僕寺) 첨정(僉正)이 되고 이듬해 풍기군수를 거쳐 선조28년(1595) 원주목사에 이르렀으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이 현판은 검정색 바탕에 흰 글씨의 해서체로 씌어 있다. 조선 중기의 명필이었던 원진해(元振海)가 쓴 글씨라고 한다. 이 현판 외에 겸암정(謙?亭)이라는 현판도 있는데, 이것은 이황이 직접 쓴 것이다.
해월종택(海月宗宅)에서 기탁한 현판이다. 해월종택은 해월 황여일(黃汝一: 1556∼?)이 살던 집이다. 황여일은 1618년 관직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집 이름을 해월헌(海月軒)에서 만귀헌(晩歸軒)이라고 고치고 이 현판을 게시하였다.
황여일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평해(平海)이고 자는 회원(會元)이며 호는 해월헌(海月軒) 또는 매월헌(梅月軒)이다. 1576년(선조 9)에 진사가 되었고, 1594년 형조정랑이 되었다. 이후 장령?장악원정?예천군수?길주목사?동래진병마첨절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평해의 명계서원(明溪書院)에 제향 되었다. 저서로는 『해월집(海月集)』 14권 7책이 있다.
황여일은 63세에 고향에 돌아가 남은 여생을 보냈다. 유려하고 부드러운 행서체로 쓰여 있는 이 현판은, 고단한 관직 생활을 마감하고 만년을 자연에서 은일자적(隱逸自適)하려는 그의 마음을 담고 있다.
연회에서 증정된 시와 그 연회의 광경을 담은 시화첩이다. 총 13쪽이다. 1599년(선조32) 6월 24일 선조가 조정의 연로한 신료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때 조정 신료와 문인들이 원로들에게 증정한 축하시를 모으고, 시첩의 뒤에는 연회의 광경 및 기타 그림을 첨부하였다.
시첩에 실린 시는 대부분 차운시(次韻詩)이며, 지봉(芝峯) 이수광(李?光),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등 유명인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화첩에 실린 그림은 유유자적하는 원로들의 모습과 신선도 등이다.
이 시화첩은 조선 중기의 문신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의 유물에 포함되어 있다. 정탁은 이 연회에 초청받은 조정의 원로였다. 현재 보물 제494-10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