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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유교연표 : 1,187건
  • 제목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杰)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흥(士興). 호는 지촌(芝村). 김극일의 증손이다.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다. 1665년 성균관전적ㆍ사헌부감찰ㆍ예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옥구현감에 임명되었다. 1689년(숙종 15) 사간이 되었으나, 이해 인현왕후 민씨가 폐위되자 신하로서 왕의 과오를 막지 못한 자책감에 사직, 낙향하였다.

    1694년 병조참의를 거쳐 참지에 있을 때 갑술옥사로 서인이 득세하자 지난날 송시열ㆍ김수항을 탄핵했던 죄목으로 인하여 전라도 동복현으로 귀양가서 이듬해 그 곳 배소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지촌집』이 있다.
  • 제목
    회당 유세철(悔堂 柳世哲)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자우(子愚). 호는 회당(悔堂). 유운룡의 증손이다.

    재종숙인 유원지에게 수학하였으며, 1654년(효종 5) 진사시에 장원으로 합격했다. 1666년 효종이 죽은 뒤 자의대비의 복상문제에 대하여 영남 유생을 대표하여 <상복고증 29조>를 지어 서인측의 기년설을 반박하는 <의례소>를 올렸다.

    군위현감으로 있을 때는 고을의 서생들에게 학문을 강의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시문에도 능했으며, 저서로는『회당문집』이 전한다.
  • 제목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升). 호는 갈암(葛庵). 영양의 석보에서 출생했으며, 경당 장흥효의 외손이다.

    영남학파의 거두로 퇴계의 학풍을 계승한 대표적 인물이다. 1646년(인조 24)과 1648년에 걸쳐 두 차례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향리에 칩거하여 학문에 전념했다.

    1666년(현종 7) 경상도 지방의 사림을 대표하여 송시열ㆍ허목ㆍ윤선도 등의 예설을 비판하는 『복제소』를 작성하면서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하였다. 1688년에 이이의 사단칠정론을 비판한 『율곡사단칠정서변』을 지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면서 정치적, 학문적 입지를 확대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유현으로 천거되어 이조참의ㆍ성균관좨주ㆍ대사헌ㆍ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94년(숙종 20) 갑술환국 때 함경도로 유배되었다가 5년 뒤에 방귀전리되어, 임하 금양(현 금소)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 제목
    금옹 김학배(錦翁 金學培)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휴(天休). 호는 금옹(錦翁). 김시온의 문인이다.

    1651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63년 문과에 급제했다. 승문원부정자을 거쳐 성균관전적ㆍ예조좌랑을 역임했다. 1671년 고성현감으로 선정을 베풀며 청빈한 관료로 칭송을 받았다. 저서로『금옹집』이 있다.
  • 제목
    긍구당 김세환(肯構堂 金世煥)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용겸(用謙). 호는 긍구당(肯構堂)이다. 권두경ㆍ유세명ㆍ이동표 등 제현과 도의교(道義交)를 맺고 『광흥갑계(廣興甲契)』를 만들었다.
  • 제목
    적암 김태중(適庵 金台重)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천삼(天三). 호는 적암(適庵)으로 김학배ㆍ이현일의 문인이다. 1678년(숙종 4) 향시에 합격했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만년에 도연에 정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 제목
    청옹 이후영(淸翁 李後榮)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사구(士久). 호는 청옹(淸翁)이다. 1673년(현종 14)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684년(숙종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고성군수ㆍ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으나, 당쟁으로 어지러운 정국을 꺼려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낙향하였다. 문학과 덕행으로 사림의 중망을 받았다.
  • 제목
    주일재 유후장(主一齋 柳後章)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풍산(?山). 자는 군회(君晦). 호는 주일재(主一齋)로 유원지ㆍ유세명ㆍ홍여하에게서 수학하였다. 역학에 밝았으며, 이황의 도학이 전수되어 30여 세에 이미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저서로『주일재집』이 있다.
  • 제목
    죽봉 김간(竹峯 金侃)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행(士行). 호는 죽봉(竹峯)으로 이유장의 문인이다.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1701년 김장생의 문묘 배향을 반대하는 상소의 소두로 추대되어 2년간 전라도 광양에 유배되었다. 1710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창의하여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732년 당상관에 올라 호군에 임명되고, 이어 장례원판결사에 임명되었다. 풍산 낙연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문집에 『죽봉문집』이 있다.
  • 제목
    창설재 권두경(蒼雪齋 權斗經)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천장(天章). 호는 창설재(蒼雪齋)로 이현일의 문인이다.

    1679년(숙종 5) 진사시에 합격하고 1710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 등을 지내고, 홍문관수찬이 되어 시정의 폐단을 논하는 상소를 올렸다. 시ㆍ서ㆍ화에 능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봉화 백록리사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에 『창설재집』이 있고, 편저에 『퇴계선생언행록』『도산급문제현록』이 있다.
  • 제목
    밀암 이재(密菴 李栽)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유재(幼材). 호는 밀암(密庵)으로 이현일의 아들이다. 중부 휘일과 숙부 숭일에게 수학했다.

    과거를 포기하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여 벼슬은 72살에 유일로 장악원주부가 제수된 것이 고작이었다. 1689년(숙종 15) 남인 정국의 요직에 오른 아버지를 따라 서울 출입을 시작했으며, 1694년 남인의 실각과 함께 아버지가 홍원ㆍ종성ㆍ광양 등지로 유배되자 배소와 본가를 오가며 봉양하였다.

    가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이황의 주리적인 견해를 더욱 발전시켰으며, 만년에 부친이 강학하던 금소와 오대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그의 학문은 외손자 이상정ㆍ광정 형제에게 전수되었다.
  • 제목
    함벽당 유경시(涵碧堂 柳敬時)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흠약(欽若). 호는 함벽당(涵碧堂)으로 이현일의 문인이다.

    1694년(숙종 20)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ㆍ예조좌랑ㆍ사헌부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에 병서를 연구하여 관군의 장수들에게 진법을 가르쳤으며,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에 올랐다.

    낙연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함벽당집』이 있다.
  • 제목
    병곡 권구(屛谷 權?)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안동(安東). 자는 방숙(方叔). 호는 병곡(屛谷)으로 이현일의 문인이다. 일찍부터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다.

    육경과 사서를 탐독했으며, 천문ㆍ주수ㆍ복서ㆍ병가 등 백가서에 두루 통달하였다. 향리에 사창을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향약을 실시 교도하여 양풍을 일으켰다. 특히 시조에도 능하여 『병산육곡』이 전한다.

    평생 향리 풍천 가곡에서 학문에 힘써 『병곡집』을 비롯한 많은 저작이 있으며, 가곡의 노동서사에 제향되었다.
  • 제목
    월회당 유원현(月會堂 柳元鉉)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태언(台彦). 호는 월회당(月會堂)이다. 1711년(숙종 37) 생원시에 합격한 후 '삼대 진사면 분에 족하다'하여 출세를 단념하고 지양에 월회강학을 열고 독서와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 제목
    약계 권순기(藥溪 權舜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갈암(葛菴) 이현일(李玄逸 1627~1704)의 문인으로 현종 때 영릉참봉을 지냈다.
  • 제목
    용와 유승현(?窩 柳升鉉)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윤경(允卿). 호는 용와(?窩)이다. 1719년(숙종 45)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ㆍ예조정랑 등을 역임하다가 임동 박곡으로 낙향해서 수년 동안 서책을 벗삼아 지냈다.

    1729년(영조 5) 병조정랑으로 복직하여 사헌부장령ㆍ영해부사를 역임했다. 1745년 공조참의를 거쳐 이듬해 풍기군수가 되어 흉년의 극심함을 보고 상관에게 달려가 구황책을 건의하고 돌아와 임소에서 죽었다. 저서로 『용와집』이 있다.
  • 제목
    난졸재 이산두(懶拙齋 李山斗)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자앙(子昻 또는 子仰). 호는 난졸재(懶拙齋). 시호는 청헌(淸憲)으로 풍산에서 태어났다.

    1714년(숙종 40)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ㆍ예조좌랑ㆍ공조참판ㆍ장례원판결사를 거쳐, 1768년 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남포현감 시절에는 백성들의 병폐를 일소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많은 치적을 쌓았다.

    기로소에 들어갔을 때 영조는 그를 자주 볼 수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화원을 보내 그의 초상을 그리게 하였다. 풍산 풍암서원에 제향되고 있으며, 저서에 『난졸재집』이 있다.
  • 제목
    제산 김성탁(霽山 金聖鐸)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진백(振伯). 호는 제산(霽山). 영양(英陽) 청기(靑杞)에서 태어났다. 김태중ㆍ이현일ㆍ이재의 문인으로 1711년(숙종 37) 진사시에 합격했다.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ㆍ사간원정언ㆍ홍문관수찬ㆍ교리 등을 지냈다. 1737년 스승 이현일의 억울함을 아뢰는 신원소를 올린 일로 인하여 제주도 정의에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전라도 광양으로 옮겨져 배소에서 죽었다.

    문장가로 알려졌으며,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임하 금양서원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에 『제산집』(16권)이 있다.
  • 제목
    양파 유관현(陽坡 柳觀鉉)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용빈(用賓). 호는 양파(陽坡)로 형 승현(升鉉)에게 수학하였으며 1735년(영조 11)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이 되었다.

    1753년 경성판관으로 있을 때 점고에 빠진 남정들로부터 받는 세금 등을 감면해주는 등 많은 치적을 남겼으며, 흉년에는 1,000여 석의 양곡을 풀어 기민을 구제하였다. 유관현이 목민관으로서 베푼 치적이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실려있으며, 저서로는 『양파집』이 전한다.
  • 제목
    삼산 유정원(三山 柳正源)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순백(淳伯). 호는 삼산(三山)이다. 1729년(영조 5) 생원시에 합격하고, 1735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였으나 10여 년을 향리에서 학문에 전념했다.

    1749년(영조 25) 성균관전적이 되었다. 외직으로 자인현감과 통천군수 재직시의 치적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영조가 그의 박학다식함을 알고 왕세자를 가르치라고 세자시강원필선에 제수했을 정도로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하여 천문ㆍ지지ㆍ음양ㆍ복서ㆍ주수를 비롯하여 병률ㆍ도학에도 정통하였다.

    특히 역학에 밝아 『역해참고』와 『하락지요』를 지었는데 당시 문학하는 선비로서 비견할 만한 사람이 드물다는 평을 받았다. 문집에 『삼산문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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