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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유교연표 : 1,187건
  • 제목
    임진왜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이다. 1597년 전쟁을 정유재란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분로쿠 게이초[文祿慶長]의 역, 중국에서는 만력의 역이라고 부른다.

    7년간의 전쟁은 조선ㆍ명나라ㆍ일본의 인명 및 전답의 황폐화 등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 제목
    정유재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일본은 임진왜란이 막바지에 이른 1597년 다시 한 번 조선을 공격하였다.

    이는 명(明)과의 협상에서 일본이 조선의 4개 도를 일본에 주고, 인질로 조선왕자와 대신 12명을 요구하자 명의 교섭담당관 심유경이 명 조정에 다른 내용을 보고했고, 이를 안 일본이 분노하며 재침하였다.
  • 제목
    대동법 실시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조선시대 선조 이후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이다.

    본래 조선시대의 공물제도는 각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게 했었는데 조세부담이 불공평하고, 수송과 저장에 불편이 많으며, 농민 부담 또한 가중되어 오히려 국가의 수입은 감소하게 되었다.

    이 모순을 시정하기 위하여 조광조ㆍ이이ㆍ유성룡 등은 공물을 쌀로 통일하여 납부하게 하였고, 특히 방납의 폐단이 가장 심한 경기도부터 시범 실시하게 되었다.
  • 제목
    인조반정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광해군은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왕권이 불안정하자 영창대군과 임해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켰다.

    이에 서인들이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위에 올린 사건이 바로 인조반정이다.
  • 제목
    이괄의 난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평안병사 이괄이 인조반정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반란이다.

    인조반정에 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2등공신 대접을 받은 것에 불만을 품은 이괄은 이수백ㆍ기익헌 등과 함께 개천을 점령하고 평양으로 진격하였다. 한때 반란군이 승승장구하였으나 장만이 이끄는 군대에게 패하였다.
  • 제목
    정묘호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627년(인조 5) 만주에 본거를 둔 후금(後金:淸)의 침입으로 일어난 조선과 후금 사이의 싸움이다.

    후금은 명을 침공하기에 앞서 조선을 정복하여 후환을 없애려는 의도로 아민을 대장으로 하여 3만의 병력으로 압록강을 건너 조선을 침공하여 왔고, 조선은 후금에 형제국의 예를 갖추기로 하고 5개 조항에 합의하여 화의하였다.
  • 제목
    병자호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명을 무너뜨린 후금은 나라이름을 청(淸)으로 바꾸고, 그동안 후금이 보낸 국서를 거절하는 등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던 조선을 침략하였다.

    12만 청군이 쳐들어와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군에게 포위되었고, 왕족들의 피난지인 강화도마저 함락되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 제목
    상평통보 유통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조선시대의 화폐로 1633년(인조 11) 김신국ㆍ김육 등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을 설치ㆍ유통하였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 해(1678) 정월에 다시 허적, 권대운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전국에 유통하기 시작하였다.
  • 제목
    안용복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용복은 조선 후기의 민간외교가로서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임을 일본에 주장한 사람이다.

    그는 울릉도에 출어했다가 일본 어선을 발견하고 독도에 정박시킨 후, 일본이 우리 나라의 바다에 침범해 들어와 고기를 잡은 사실을 문책하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사과를 받고 돌아왔다.
  • 제목
    장길산의 난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장길산은 조선 숙종 때 해서 지방의 구월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활동한 도둑의 우두머리로서, 본래 광대 출신이나 도당을 모아 세력을 늘리면서 활동하였다.

    이후 그는 어려워진 사회조건 속에서 하층민인 서얼ㆍ승려ㆍ농민 등을 결합하여 왕조를 창건하려는 모반사건을 일으켰다.
  • 제목
    대동법 확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대동법은 조선시대 선조 이후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납세제도로, 경기도와 전라도, 경상도의 실시 이후 1708년(숙종 34) 황해도에 대동법을 모방한 상정법을 시행하면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세액도 12말로 통일되었고, 산간 지방이나 불가피한 경우에는 쌀 대신 베ㆍ무명ㆍ돈으로 대납할 수 있게 하였다.
  • 제목
    백두산정계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백두산에 세운 조선과 청(淸) 사이의 경계비로, 백두산의 귀속을 주장하던 청의 접반사가 백두산 남동방 4km, 해발 2,200m 지점에 일방적으로 세운 것이다.
  • 제목
    탕평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7세기 후반부터 한쪽 당파가 권력을 얻으면 다른 파를 제거하는 등 붕당의 폐단이 극심해지자 1687년 박세채가 왕이 한쪽 세력에 치우치면 안된다는 탕평책을 제시하였다.

    이후 영ㆍ정조 때 실현된 탕평책은 같은 당파내 결혼을 금지하기도 하였으나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 제목
    균역법 실시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균역법은 16개월에 2포씩 내던 군포를 1포로 축소시킨 것으로, 군역으로 농민들의 생활이 힘들자 1750년 제정하였다.

    군포가 줄자 토지세를 늘리고 어전세와 염세, 선박세를 국가가 징수하였다. 그러나 마을 단위로 군포 총량이 있어 여전히 골칫거리였다.
  • 제목
    장예원 혁파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장예원은 조선 건국 이래 노비를 관장하여 오던 곳으로, 1764년 비총제의 실시로 업무가 줄어들었고 노비사송도 장예원 관리들의 수탈을 피해 한성부나 형조에 주로 청원하게 되어 폐지되었다.
  • 제목
    천주교 전래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784년(정조 8) 이승훈이 연경에서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귀국하였고, 권철신이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는 등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되었다.

    권철신ㆍ정약전ㆍ정약종ㆍ정약용ㆍ이승훈 등이 조선교회 창설의 주동 인물이 되었다.
  • 제목
    서학 금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서학이란 조선 중기 이후 조선에 전래된 서양사상과 문물을 말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천주교를 일컬었다.

    서학은 조선시대 지배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던 유교와 상치되는 점이 많아서 사교(邪敎)로 인정되었다. 이 해 처음 서학이 금지 되고 지속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다.
  • 제목
    신유박해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신유박해는 1801년 천주교도 300명이 처형된 사건을 일컫는다. 이는 천주교가 기존 사회질서와 대립하기도 했고, 특히 순조 즉위로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대대적인 남인 토벌의 하나로 남인들이 대다수였던 천주교도 색출작업을 벌였던 것이다.
  • 제목
    홍경래의 난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833년 평안도에서 홍경래를 중심으로 기존 체제에 불만을 품은 농민과 몰락 양반들이 봉기하였다.

    봉기군은 농민들의 호응으로 청천강에서 의주까지 10개 지역을 손에 넣었으나 정부군과의 격전으로 4개월 만에 진압되고 전체 3천 명 중 2천 명이 즉시 사살되었다.
  • 제목
    안동김씨 세도정치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813년(순조 13) 순조의 친정(親政)이 개시되어 순조의 장인 김조순은 국정의 최고실력자로 부상하였다.
    그는 국왕에게 위임을 받아 정권을 잡고 이때부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그 뒤 조만영에 의한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이어졌으며, 1851년에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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