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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유교연표 : 1,187건
  • 제목
    안동부사 손소(孫昭) 부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경주(慶州). 자 일장(日章). 시호 양민(襄敏).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467년 이시애의 난 때 종사관으로 출정, 난이 평정된 뒤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내섬시정에 특진되었다. 공조참의 등을 거쳐 계천군에 봉해졌고 이어 안동부사, 진주목사 등을 지냈다.
  • 제목
    안동부사 안초(安鉥) 부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420(세종 2)∼1483(성종 14).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자이(自邇)이다.

    1447년 친시문과에 급제, 승문원 정자를 거쳐 박사가 되었다. 1466년 경기ㆍ충청ㆍ전라 삼도의 찰리사를 거쳐 1467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고, 성종 7년(1476) 안동 부사로 나갔다. 1478년 한성부 판윤ㆍ형조 참판을 역임하고, 1481년에는 황해도 관찰사ㆍ호조 참판을 역임하였다.
  • 제목
    충재 권벌(?齋 權?)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안동(安東).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齋)ㆍ훤정(萱亭). 시호는 충정(忠定). 북후 도촌 출생이다.

    1504년(연산군 10) 대과에 급제했으나 김처선의 ‘처(處)’자가 글 속에 있다고 취소되어, 1507년(중종 2) 별시문과에 다시 급제하였다.
    1519년 예조참판이 되었고, 이어 삼척부사로 나갔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파직당했다. 1533년 밀양부사로 복직되어, 경상도관찰사ㆍ형조참판을 지냈다.

    1545년(인종 1) 7월 명종이 즉위하자 병조판서에 올랐다. 1547년(명종 2)에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구례에 유배된 후, 삭주에 이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1568년(선조 원년) 신원되어 1591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봉화 삼계서원에 배향되었으며, 문집에 『충재집』이 있다.
  • 제목
    탁청정 김유(濯淸亭 金?)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자는 유지(綏之)요, 호는 탁청정(濯淸亭)으로 예안 오천리에서 태어났다.

    이조참판에 추증된 김효로(金孝盧)의 둘째 아들이며, 운암(雲巖) 김연(金緣)의 아우이다. 어려서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김만균(金萬鈞)의 집에서 양육을 받았으며, 김만균의 사후에는 그의 재산까지 물려받아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하였다.

    김만균은 단성 현감을 지낸 이로, 김효지의 후사였던 김간의 사위였다.
  • 제목
    마애 권예(磨厓 權?)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안동(安東). 자는 경신(景信). 호는 마애(磨厓). 서후 금계에서 살았다.

    1516년(중종 1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에 임명되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사관으로서 조광조 일파의 구원에 앞장섰다.

    이 후 사헌부장령ㆍ홍문관교리를 거쳐 대사간ㆍ대사헌으로 있을 때, 삼간과 삼흉의 죄상을 보고하여 중죄에 처하도록 하였다. 1535년 경상도관찰사를 거쳐 호조ㆍ형조ㆍ이조판서를 지내고 우참찬에 이르렀다.

    1538년(중종 33)년 모친상을 당하여 향리로 돌아온 후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낙동강 언덕에 낙강정을 짓고 산수를 즐기며 노후를 보냈다.
  • 제목
    온계 이해(溫溪 李瀣)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시호는 정민(貞敏). 도산 출생. 퇴계의 형이다.

    숙부인 이우에게 글을 배워 1528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533년 사간원사간ㆍ정언을 거쳐 1541년 직제학이 되었다. 1545년(인종 1)에는 성절사로 명에 다녀왔고, 1546년(명종 1) 이후에는 황해도ㆍ충청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인종 즉위 시 대사헌에 있으면서 이기(李?)를 우의정에 임명하는 것에 반대하여 이기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명종 즉위로 소윤이 득세할 때 이기의 심복 이무강의 탄핵을 받아 갑산으로 귀양가는 도중에 양주에서 사망하였다.

    선조 때에 신원되었으며, 영주의 삼봉서원ㆍ예안 청계서원에 제향되었다. 예서(隸書)에 뛰어났다.
  • 제목
    청계 김진(靑溪 金璡)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本貫)은 의성(義城)으로 연산군(燕山君) 6년(1500)에 태어나 선조 13년(1580)에 몰(歿)하였다. 자(字)는 영중(瑩仲)이고 호는 청계(靑溪)이다. 퇴계의 문인인 학봉 김성일의 아버지이다.

    1525년(중종 20)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아들 3명이 문과에 급제하고, 2명이 소과에 급제하여 의성김씨 천전파의 문호를 크게 열어 유림대가의 터전을 닦았다.

    관직은 자헌대부 이조판서겸 지의금부사로 증직 되었으며, 안동의 사빈서원(泗濱書院)에 제향되었다.
  • 제목
    퇴계 이황(退溪 李滉)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진성(眞城).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시호는 문순(文純). 예안 온혜에서 출생. 진사 식(埴)의 제7자. 생후 7개월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춘천박씨의 가르침 속에 자랐다. 12세에 숙부 이우에게서 논어를 배우고, 이후 청량산과 봉정사에서 독학으로 학문에 매진하였다.

    1523년(중종 18) 성균관에 입학하여 1528년 진사가 되고 153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승문원부정자ㆍ호조좌랑ㆍ수홍문관찬ㆍ사간원정언 등을 거쳐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542년 충청도 암행어사로 나갔으며, 사헌부장령을 거쳐 이듬해 대사성이 되었다.

    1545년 을사사화 때 이기에 의해 삭직되었다가 이어 사복시정이 되고 응교 등의 벼슬을 거쳐 1552년 대사성에 재임, 형조ㆍ병조의 참의ㆍ부제학ㆍ공조참판이 되었다. 1566년 공조판서에 오르고 이어 예조판서ㆍ우찬성을 거쳐 양관대제학을 지내고 이듬해 고향에 은퇴, 학문과 교육에 전심하였다.

    그는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유학자로 성(誠)을 기본으로 하고, 일생동안 경(敬)을 실천하는데 힘썼다.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발전시키고 이기호발설을 사상의 핵심으로 하였다. 그는 계상서당과 도산서당을 건립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길렀는데, 그의 학풍은 뒤에 그의 문하생인 유성룡ㆍ김성일ㆍ정구 등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를 이루었다. 후일 그의 학설은 임진왜란 후 일본에 소개되어 그곳 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직자로, 학자로, 교육자로 그는 일생은 만세의 사표가 되었으며, 그가 모신 중종ㆍ명종ㆍ선조로부터도 지극한 존경을 받았다. 시문은 물론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 및 선조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예안 도산서원을 비롯하여 전국의 수십 개 서원에 배향되었다.

    저서에 『퇴계전서ㆍ수정천명도설ㆍ성학십도ㆍ자성록ㆍ심경석의ㆍ주자서절요ㆍ상례문답ㆍ사칠속편』외 많은 저술이 있고, 작품으로는 시조『도산십이곡』, 글씨에 『퇴계필적』이 있다.
  • 제목
    죽헌 정두(竹軒 鄭枓)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本貫)은 청주(淸州)이며, 자(字)는 대임(大任)이고, 호(號)는 죽헌(竹軒)으로 지헌(芝軒) 사성(士誠)의 아버지이다.

    선생은 음보(蔭補)로 조봉대부 사섬시 첨정이 되었으며, 한성부우윤에 증직되었다. 퇴계 선생이 그의 대인다운 자질을 칭찬하였다.
  • 제목
    묵재 박사희(默齋 朴士熹)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덕명(德明), 호는 묵재(?齋) 또는 반계(蟠溪). 조부는 통례원 인의(引儀) 효상(孝商)이고, 아버지는 장수훈도 형(馨)이다.

    예천 다인현 반용리에서 태어난 그는 8세에 가정에서 소학을 익혔다. 1538년 퇴계의 제자가 되었으며, 성리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학행이 인정되어 벼슬이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 제목
    안동부사 송여해(宋汝諧) 부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452(문종 2)∼1510(중종 5).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자는 우경(虞卿)이다.

    1477년(성종 8) 사마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음직으로 참봉이 되고 봉사ㆍ직장을 거쳐 한성부 참군ㆍ형조ㆍ호조좌랑을 지냈다. 14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조 참의가 되었으나 연산군이 직언을 싫어하므로 미움을 사서 옥천에 유배되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어 제용감정을 지내고 안동 부사로 나갔다가 죽었다. 예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 제목
    안동부사 이우(李?) 부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진성(眞城). 자는 명중(明仲). 호는 송재. 진사 계양(繼陽)의 자로 퇴계의 숙부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고, 1511년 형조참판을 거쳐 강원도관찰사에 임명되었다. 1512년 늙은 모친을 봉양하고자 사직 귀향했다. 이 때 온계ㆍ퇴계 두 조카들을 가르쳤다.

    1515년 다시 안동부사로 부임하였으며, 1517년 겨울 병으로 관아에서 몰하니 나라에서 예관을 보내어 치제했다.
  • 제목
    입암 유중영(立巖 柳仲?)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풍산(豊山). 자는 언우(彦遇). 호는 입암(立巖). 영의정 성룡(成龍)의 아버지.

    1540년(중종 35)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학유로 관직에나가 학록ㆍ학정을 거쳐 박사가 되었다. 1549년(인종 4) 성균관전적ㆍ사헌부감찰ㆍ공조좌랑을 거쳐 유신현감으로 나가 밝은 다스림으로 칭송을 받았다.

    형조참의ㆍ황해도관찰사ㆍ정주목사ㆍ청주목사를 거쳐 1569년(선조 2) 병조참지ㆍ경연참찬관ㆍ승지ㆍ예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 제목
    후조당 김부필(後彫堂 金富弼)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광산(光山). 자는 언우(彦遇). 호는 후조당(後彫堂). 예안 오천에서 출생했다.

    퇴계의 문인으로 1537년(중종 32) 생원시에 합격한 후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향리의 강변에 정자를 짓고 시문을 즐기며 학문에 전심하였다.

    사후에 학행이 높이 평가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문순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예안 오천의 낙천정사에 제향되었으며, 저서에 『후조당유고』가 전한다.
  • 제목
    동호 변영청(東湖 邊永淸)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원주(原州). 자는 개백(開伯). 호는 동호(東湖). 서후 금계출생. 퇴계의 문인.

    1549년(명종 4)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을 역임했다. 당시의 간신들의 비행을 격렬히 상소로 고한 후 낙향해 있다가, 1955년 구봉령의 추천으로 다시 관직에 나아가 사헌부집의를 거쳐, 남원부사로 나가 크게 선정을 베풀어 명종으로부터 표리와 안마를 하사받았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대간으로 재임시는 강직한 성품으로 온 나라 안에 명성을 떨쳐 유경심ㆍ장문보와 더불어 세칭 ‘화산삼걸’이라 불려졌다. 서후 금고서원에 제향되었다.
  • 제목
    귀촌 유경심(龜村 柳景深)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풍산(豊山). 자는 태호(太浩). 호는 귀촌(龜村)이다. 1544년(중종 39) 생원으로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을 지내고, 1546년(명종 1) 승정원주서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고, 이듬해 홍문관수찬으로서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551년(명종 6) 다시 기용되어 회인현감이 되고, 1568년(선조 1) 호조참판으로 성절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그 후 대사헌 등을 역임했다.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했다가 병을 얻어 돌아오던 중에 경기도 장단에서 몰했다. 외향인 일직 귀미에 살았으며, 풍천 낙고사에 제향되었다.
  • 제목
    안동부사 이현보(李賢輔) 부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 영천(永川). 자는 비중(仲). 호는 농암. 시호는 효절(孝節). 예안 분천(汾川)에서 태어났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하였고, 1504년 사간원정언으로 있을 때, 서연관의 비행을 공박하여 안동으로 귀양갔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복직, 밀양부사ㆍ안동부사, 충주목사를 지냈다.

    1523년(중종 18) 성주목사 때 선정을 베풀어 왕으로부터 표리를 하사받았다. 1542년 호조참판에 이르러 은퇴를 청하여 낙향했다.

    ‘어부단가’ 5수와 ‘귀전록’ 3수 등 자연을 노래한 여러 편의 시조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예안 분강서원에 배향되었다.
  • 제목
    취규재 권심행(聚奎齋 權審行)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안동(安東). 자는 가립(可立). 호는 취규재(聚奎齋). 북후 도촌 출생. 현감 의(?)의 자.

    어려서 숙부 권벌을 따라 상경하여 수학했으며, 1552년(명종 7) 생원시에 합격했다. 이후 과거를 단념하고 김부필(金富弼)ㆍ조목(趙穆)ㆍ권대기(權大器) 등과 교유하며 향리에서 후진을 가르쳤다.

    만년에 당시의 안동현감 서익(徐益)의 모함으로 서울로 불려가 서울 객사에서 타계했다.
  • 제목
    유일재 김언기(惟一齋 金彦機)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1520년(중종 15)에 태어나 1588년(선조 21) 몰하였다. 자는 중온(仲?)이고 호는 유일재(惟一齋)이다.

    백담 구봉령, 후조당 김부필, 회곡 권춘란, 송암 권호문, 지산 김팔원 등 제현과 도의교(道義交)를 맺고 강학에 힘썼다.

    1567년(명종 22) 48세로 생원시에 합격한 뒤 벼슬에 뜻이 없어 평생 진사로서 오로지 후진양성에 힘써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용계서원과 옥계서원에 제향되었다.
  • 제목
    약봉 김극일(藥峰 金克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의성(義城).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峯). 청계 김진의 장자(長子)이다.

    1548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ㆍ예천군수ㆍ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시문 약간 편이『연방세고』에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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