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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유교연표 : 1,187건
  • 제목
    인재 권대기(忍齋 權大器)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수(景受) 호는 인재(忍齋)이다. 퇴계의 문인으로 1552년(명종7)에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아니하고 이계서원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훗날 아들 굉(宏)이 귀하게 되어 집의에 증직되었으며 용계서원에 제향되었고 실기가 있다. 간옹 이헌경이 묘명을 지었다.
  • 제목
    월천 조목(月川 趙穆)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횡성(橫城). 자는 사경(士敬). 호는 월천(月川). 도산 월천에서 출생했다.

    퇴계의 큰제자 중 한명으로 1552년(명종 7)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대과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1571년(선조 4) 이조의 추천으로 동몽교관ㆍ공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으며, 후에 성균관의 천거로 집현전참봉이 되었다가 곧 사직했다.

    1576년 봉화현감을 거쳐 1594년(선조 27) 군자감주부로서 일본과의 강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고, 이듬해 장악원정으로 전임되었다. 1601년 사재감정을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집안이 가난했으나 평생을 학문 연구에만 뜻을 두어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도산서원에 스승과 같이 제향되었으며, 또 예천의 정산서원, 봉화의 문암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 제목
    읍청정 김부의(?淸亭 金富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525년(중종20)에 외내마을에서 태어났다. 후조당 부필(富弼)의 동생으로 자(字)는 신중(愼仲)이며, 호는 읍청정(?淸亭)이다.

    마음이 진솔하고 순박하였으며, 자라면서도 항상 예법에 따라 행동하여 사리에 맞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시와 학문을 익혔으며 좀 크자 퇴계의 문하에 나아가 세상의 이치와 도학연구에 매진하여 동문인 학봉이 그를 제 1인자로 존경할 만큼 훌륭한 인품을 이루었다.
  • 제목
    백담 구봉령(栢潭 具鳳齡)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능성(綾城). 자는 경서(景瑞). 호는 백담(栢潭). 시호는 문단(文端). 와룡 지내 출생.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0년(명종 15)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이 되었다. 홍문관에 등용된 후 문신정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홍문관수찬에 임명되고, 병조좌랑을 거쳤다.

    1583년(선조 16) 전라도관찰사를 지냈고, 다시 대사헌ㆍ부제학을 지냈다. 당시 동서 당쟁이 시작되던 무렵이었으나 중립을 지키기에 힘쓰다가 관직을 그만 두고 향리로 내려와 학문을 벗삼아 여생을 보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사후 와룡의 주계서원에 제향되었다.
  • 제목
    귀봉 김수일(龜峰 金守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의성(義城). 자는 경순(敬純). 호는 구봉(龜峰). 청계 김진의 둘째 아들로 퇴계의 문인이다.

    1555년(명종 10)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고향인 임하 전암에 백운정을 짓고, 유연자적하며 집안 자질과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사빈서원(泗濱書院)에 제향되었다.
  • 제목
    성재 금난수(惺齋 琴蘭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봉화(奉化).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성재(惺惺齊)ㆍ고산주인(孤山主人). 퇴계의 문인이다.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한 후 1577년(선조 10) 제릉참봉이 되었고, 1596년(선조 29)에 성주판관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안동의 수성장으로 안동에 주둔한 명 나라 군사를 도와 성읍을 온전히 보전케 했다. 만년에 낙향하여 예안 부포에서 후진을 양성하며 학문에 전념했다.

    난리에 이바지한 공으로 사후에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예안 동계서원에 배향되었다.
  • 제목
    안동부사 김탁(金鐸) 부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1531년에 김탁(金鐸)이 안동부사로 부임하였다.
  • 제목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안동.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이다. 1561년(명종 16)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연이어 부모를 여의자 3년씩 여막을 지키며 관계에의 진출을 단념하고, 청성산 기슭에 무민재를 짓고 유유히 살았다.

    만년에 덕망이 더욱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으며, 집경전참봉ㆍ내시교관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시가에도 관심을 가져 경기체가를 본뜬 『독락팔곡』과 시조 『한거십팔곡』을 지었다. 안동 송암서원에 제향되었으며, 문집에 『송암집』이 있다.
  • 제목
    낙금헌 이정백(樂琴軒 李庭柏)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진성. 자는 여직(汝直). 호는 낙금헌(樂琴軒)이다.

    천성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 상사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자라서는 학문에 힘써 김성일, 남치리, 권우 등과 교우하였다.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임진왜란 시에 의병을 일으켜 대장에 추대되었다가 용궁에 이르러 여러 고을 의병이 합하매 대장을 김해에게 사양하고 군량미 지원에 힘썼다.

    행검으로 추천되어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작산사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 『낙금헌집』이 있다.
  • 제목
    임연재 배삼익(臨淵齋 裵三益)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흥해(興海). 자는 여우(汝友). 호는 임연재(臨淵齋). 백죽당 상지(尙志)의 후손으로 도목촌에서 출생했다.

    퇴계의 문인으로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하고, 156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573년(선조 6) 홍문관에 등용되었으며, 풍기군수ㆍ양양부사를 지냈다. 1588년 황해도관찰사로 나가 큰 흉년을 만나 구황에 힘쓰던 중, 병을 얻고도 민정시찰을 강행하다가 순직하였다.

    월곡 도생서원(道生書院)에 제향되었다.
  • 제목
    운암 김명일(雲巖 金明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언순(彦純). 호는 운암(雲巖). 청계 김진의 셋째 아들로 퇴계의 문인이다.

    1569년(선조 2) 향시에 합격하여 이듬해 회시를 보러 형 수일과 함께 상경했다가 병이 심해져 귀향하던 도중 경기도 용인에서 향년 37세로 몰하였다.

    사빈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연방세고』ㆍ『운암일기』가 있다.
  • 제목
    함재 서해(涵齋 徐?)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정지(挺之). 호는 함재(涵齋). 퇴계의 문인이다.

    일찍부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20세에 이미 문장학문이 높은 경지에 이르러 사림의 존경을 받았으나 23세로 요절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대구 귀암서원(龜巖書院)에 제향되었다.
  • 제목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峯). 청계 김진의 넷째 아들로 임하 천전에서 출생하였으며, 퇴계의 큰제자 중 한명이다.

    1564년 진사시를 합격하고, 1567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승문원부정자ㆍ대교ㆍ봉교를 역임하였다. 1572년(선조 5)에 사육신 복관 상소를 올렸으며, 1579년 사헌부장령이 되어서는 시사를 과감하게 비판하고 종실의 비리를 탄핵하여 ‘대궐의 호랑이(殿上虎)’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 함경도순무어사와 나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590년 통신부사가 되어 정사 황윤길과 일본에 건너가 실정을 살피고 귀국했다. 이 때 일본 유학의 원조인 등원성와(藤原惺窩)에게 퇴계학의 진수를 처음 가르쳤다.

    귀국 후의 발언 때문에 안방준 등에 의해 왜란을 불러온 장본인으로 매도되었고 파직되었으나, 왜란 초 경상도 일대가 왜군에 의하여 유린되자 경상도초유사에 임명되어 곽재우ㆍ김면ㆍ정인홍 등의 의병 활동을 도왔다.

    정치적으로는 동인에 속하였으며, 저서에 『해사록』『상례고증』『조선연혁풍속고이』등을 남겼고, 후손들에 의하여 문집 『학봉집』이 간행되었다.

    안동의 호계서원과 임천서원에 제향되었다. 중년에 처향을 따라 서후 금계로 이거했다.
  • 제목
    경당 장흥효(敬堂 張興孝)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행원(行原). 호는 경당(敬堂). 김성일ㆍ유성룡ㆍ정구의 문인으로 퇴계의 학통을 이어 이시명ㆍ이휘일ㆍ이현일에게 전수하였다.

    역학에 밝아 일원소장도를 연구하여 후세에 전하고 있다. 인조 때 음직으로 창릉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 전에 몰하였다.

    사후 지평에 추증되었으며, 경광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경당집』이 있다.
  • 제목
    파산 유중엄(巴山 柳仲淹)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풍산(?山). 자는 문경(景文)ㆍ희범(希范). 호는 파산(巴山)이다. 퇴계의 문인으로 타양서원과 분강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유고로는 약간 편이 『파산일고』에 전하고 있다.
  • 제목
    겸암 유운룡(謙菴 柳雲龍)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응견(應見). 호는 겸암(謙唵).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관찰사 중영(仲?)의 장자로 하회에서 태어났다. 서애 유성룡의 형으로 퇴계의 문인이다.

    경학ㆍ행의로 이름이 높아 1572년(선조 5) 음보로 전함사별좌가 되고, 인동현감ㆍ한성판관을 거쳐 평시서령을 역임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사복시첨정이 되었고, 이듬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토적을 소탕하는 공을 세웠고, 1595년 벼슬이 원주목사에 이르렀다.

    풍천 화천서원ㆍ예천 상리의 우곡서원에 제향되었다.
  • 제목
    안동부사 김광철(金光轍) 부임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자유(子由)이다. 1513년(중종 8)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밀양 현감ㆍ군자감 첨정ㆍ장령ㆍ집의를 거쳐, 승지ㆍ형조 참의를 지낸 후 1535년 동지사의 일행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예조 참판이 되었다.

    같은 해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며, 1542년 안동 부사 재임시 구휼한 공으로 가의대부에 승진, 이듬해인 1543년 8월 10일 한성부우윤에 임명되었고, 명종 즉위 후 예조 참판에 올라 『중종실록』과 『인종실록』 편찬에 동지사로 참여했다.
  • 제목
    남악 김복일(南嶽 金復一)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계순(季純). 호는 남악(南嶽). 청계 김진의 다섯째 아들이다.

    1570년(선조 3)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어사ㆍ풍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사빈서원(泗濱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연방세고』가 있다.
  • 제목
    간재 이덕홍(艮齋 李德弘)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 지중추부사 현보(賢輔)의 종손자로 영주 녹동에서 태어났다.

    퇴계와 금난수의 문인으로 1578년(선조 11) 조정에서 이름난 선비 9명을 등용할 때 제4위로 뽑혀 집경전참봉이 되었다. 종묘서직장 역임시 종묘방화사건으로 평은역에 유배되었다가 사옹서직장으로 복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세자익위사부수로 세자를 호종했다. 특히 주역에 밝았고,『중용』『심경』『고문전후집』『가례』등을 주석했다.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영주의 우계서원(迂溪書院)에 제향되었다.
  • 제목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출생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 시호는 문충(文忠). 관찰사 중영(仲?)의 차자로 퇴계의 문인이다.

    1564년(명종 19) 사마양시를 거쳐, 156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이듬해 예문관검열과 춘추관기사관을 겸하였고, 1569년(선조 2)에는 성절사의 서장관으로 명 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대제학을 거쳐, 1590년 우의정에 광국공신 3등으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이듬해 좌의정에 승진했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로 군무를 총괄, 이순신ㆍ권율 등 명장을 등용하였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왕을 호종하여 평양에 이르러 반대파의 탄핵으로 면직되었으나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도체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명 나라 장수 이여송과 함께 평양을 수복하고 그 후 충청ㆍ경상ㆍ전라 3도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으며, 이어 다시 영의정이 되어 4도 도체찰사를 겸하여 군사를 총지휘하였다. 화기 제조, 성곽 수축 등 군비 확충에 노력하는 한편, 군대 양성을 역설하여 훈련도감이 설치되자 제조가 되었다.

    1598년 명나라 경략 정응태가 조선이 일본과 연합, 명 나라를 공격하려 한다고 본국에 무고한 사건이 일어나자, 이 사건의 진상을 변명하러 가지 않는다는 북인의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했다. 1600년에 복관되었으나, 다시 벼슬은 하지 않고 은거했다.

    1604년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 도학ㆍ문장ㆍ덕행ㆍ글씨가 두루 뛰어났고, 바둑도 아주 잘 두었다고 한다. 안동의 병산서원ㆍ호계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서애집』ㆍ『징비록』이 있고, 편저에 『황화집』ㆍ『정충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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