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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제목
    선성김씨 백암재사(宣城金氏 百巖齋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의 특징은 뒷면에서 보이는 지붕선을 제외하고 앞면과 양 측면에서는 추녀들림 방식을 택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뒷면의 지붕선에서는 들림의 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건물은 口자형을 하고 있지만, 빈틈없이 서로 이어진 口자형이 아니라 아래편의 一자 형태 건물과 위편의 ㄷ자 형태 건물이 붙어 있다. 아래채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이다. 중앙의 3칸은 대문 영역이고, 좌측과 우측의 각 1칸은 헛간 영역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좁은 사각형의 안마당이다. 안마당의 중간 정도를 옆으로 잘라서 아래는 평면으로 만들고 위에는 마당 전체를 다 7층의 계단으로 덮었다. 7층의 계단 위에는 섬돌을 놓아 안채의 마루에 오를 수 있게 하였다.
  • 제목
    구산서당(龜山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구산서당은 구암(龜菴) 전수동(全秀東, 1791~1862)이 만년에 머물러 배우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서당 서편의 까치구멍집은 주사의 용도로 지어졌다. 이 까치구멍집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건물로 독특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건물은 서당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데, 서당보다 규모는 오히려 더 크다.
  • 제목
    화산이씨 충효당(花山李氏 忠孝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충효당의 정문은 작고 아담하다. 양쪽 나무판 문을 달고, 그 앞으로 반팔 정도 나아가서 앞 선의 기둥 둘, 또 그 뒤로 반팔 정도 나아가서 뒤 선의 기둥 둘을 키 높이가 조금 넘도록 세워 올리고 위에 지붕을 덮었다. 충효당이 서 있는 바닥면은 그대로 경사면이다. 이 바닥면의 기울기 문제는 건물의 아랫부분을 기둥을 써서 누각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충효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이다. 맨 앞 선으로는 5 개의 원형기둥이 나와 서 있다. 마루에서 보는 목구조는 상당히 장엄하게 짜 맞추어져 있다.
  • 제목
    청량정사(淸凉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는 청량정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이(武夷)의 36동천(洞天)은 세상에 유명하니 회암(주자)선생은 정자를 짓고 노래해 말하기를, ‘나의 샘과 바위에서 살리라.’하였다. 청량의 12봉우리는 해동에 이름이 높으니 퇴도(退陶) 이황 선생은 산놀이의 기록에서 ‘우리집 산’(吾家山)이라 하였다. 이에 우리의 두 선생이 나와 노닐고 감상하는 여가에 경치 좋은 곳을 차지해서 그 인자함과 지혜로움의 끝없는 즐거움을 의탁하였다.” 즉 청량정사는 주희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따 지은 것이고, 그 안에는 정통 주자학을 계승하는 이황의 자부심이 표현되어 있다. 집의 규모도 그렇다. 오산당은 3칸 건물인데, 이는 무이정사의 3칸 집을 본받아 도산서당의 3칸 집으로 전해주는 연속과 계승이다. 오산당은 작지만, 오산당은 제대로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 제목
    갈천정(葛川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 있는 갈천정(葛川亭)은 갈천 김희주가 지은 정자이다. 그는 1808년(순조 8) 당시 안동부 재산현 갈산리 선영 아래에 이 정자를 지었다. 산이 깊고 물이 돌아나가며, 아래에는 폭포가 있고 돌이 파여 그윽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 위에 집을 짓고 재(齋)를 족한(足閒)이라 하고, 헌(軒)을 수월(水月)이라 이름 붙였다. 정자를 갈천정이라 이름 지어 현판을 걸었는데, 이는 만년에 한가롭게 몸과 마음을 정양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갈천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이다. 왼쪽 대청 칸 위에는 수월헌(水月軒)이란 현판이 붙어 있고, 오른쪽 온돌방 칸 위에는 족한재(足閒齋)란 현판이 붙어 있으며, 가운데 방 위에 갈천정이란 현판이 붙어 있다. 정자가 있는 갈산리는 정자마(정자마을)라 불리는데, 이는 갈천정 건립 이후부터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 제목
    김갑동가옥(金甲東家屋)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김갑동가옥은 이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길 쪽으로 나와 마을 집들의 앞 선을 구성하고 있기도 하다. 대문 앞으로는 서쪽 편으로 치우쳐서 젊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버티고 서 있다. 아이 몸통만한 굵기에 이른 이 은행나무는 김갑동가옥 위로 스치고 지나간 세월의 길이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이제 건강한 활력을 뽐내고 있다. 김갑동가옥 역시 그런 활력을 드러내 보여주어야 하는 나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나무 위에 걸쳐진 세월과는 달리 김갑동가옥 위를 스쳐 지난 세월은 가혹한 야만성을 행사하여 이 집에서 생활의 훈기를 앗아가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떠나고 집은 방치되어서, 건물 구석구석이 무너져 가고 있다.
  • 제목
    계서당(溪西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계서당(溪西堂)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동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집이다. 정면 7칸, 측면 6칸의 口자형으로 되어 있는 사랑채는 후에 넓히거나 다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쪽 마당 끝에 대문간채를 두고, 그 북쪽 높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口자형 집을 이루고 있다. 대문칸을 들어서면 비교적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맞은편 높은 곳 서쪽에 중문간채가 있다. 동쪽에는 사랑채가 자리 잡았고, 사랑채 서쪽의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가 있다. 또한 동북쪽에 사당을 배치하였다. 이곳의 안채와 사랑채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채는 도장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사랑채는 대부분 홑집인데, 이 집은 겹집으로 만들어 안채의 날개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안채 부분이 약간 변형되었다.
  • 제목
    화수정사(花樹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화수정사의 고방은 일제시대 초기에 순사들의 주재서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1910년경의 일이다. 나중에 장터에 지서가 지어지면서 순사들은 그곳으로 이동하여 갔다. 이것은 당시의 물야에서 오록의 풍산김씨 일문이 가장 주의 깊게 관리될 필요가 있는 곳이었다는 것과 상관되는 문제일 것이다. 화수정사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정면 4칸 중, 오른쪽 2칸은 방이고, 왼쪽 2칸은 마루이다.
  • 제목
    풍산김씨 노봉정사(?山金氏 蘆峯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노봉 김정은 오록마을에 입향하여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노봉정사를 지어 후학들을 교육하는 곳으로 삼았다. 오록마을에 들어가면 돌담으로 쌓은 울타리가 특히 눈을 잡아끈다. 집들은 넓은 평지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다들 큼직큼직한 기와집들이다. 아마도 옛 사람들이 말한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이런 집들로 보인다. 고대광실로 이루어진 마을, 잘 정비된 마을 길,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산 속의 평지, 조용하게 불어드는 바람, 풍부하게 쏟아지는 태양빛. 그 속에서 두터운 돌담 안에 자리 잡은 옛 집. 오록은 그렇게 건물만큼이나 건물이 놓인 환경이 아름다운 곳이고, 환경만큼이나 건물의 품격이 높은 향취를 풍기고 있는 곳이다. 노봉정사는 그런 오록마을의 한가운데에 돛대처럼 자리 잡고 있다.
  • 제목
    장암정(藏庵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장암정은 봉화읍 물야면 오록리 마을 앞 정 중앙에 자리 잡은 건물이다. 김창조(金昌祖, 1581~1637)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724년 풍산김씨(豊山金氏) 문중에서 건립한 정자로 지방 유생들과 사림에서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다. 김창조의 또 다른 호를 따서 만축정(晩築亭)이라고도 한다. 1980년 중건하였다.
  • 제목
    청간당(淸澗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청간당(淸澗堂)은 청간당 김정원(金鼎元, 1655~1735)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 김탁연(金卓然)이 건립하여 자손들의 강학 장소로 사용한 정자이다. 김정원의 본관은 선성(宣城), 안집사 김륵(金?)의 후손이다. 건물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알 수 없고, 건물의 건축 형식으로 미루어 보거나 중수기를 쓴 서소(書巢) 김종휴(金宗烋, 1783~1866)의 생몰 연대 등으로 볼 때 조선 말기에 중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오록리 너다리[판교(板橋)]마을 뒤편 야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 제목
    한천정사(寒泉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한천정사는 행계서원과 짝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한천정사의 발치 아래로 좁은 분지는 사선으로 펼쳐지고, 건너산은 그 분지의 사선을 따라 또 사선으로 달려간다. 그 한가운데를 이번에도 또 사선으로 가르며 흘러내리는 것이 행계(杏溪), 수식마을 논과 밭을 적셔주는 작은 시내이다. 한천정사는 행계의 동북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행계서원은 행계의 서남쪽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행계서원은 근동 유림이 힘을 모아 건립하고, 김이선과 그 아들 김강(金鋼)을 모신 곳이다.
  • 제목
    도암정(陶巖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도암정은 1650년 무렵에 황파(黃坡) 김종걸(金宗傑, 1628~1708)이 건립한 정자로, 당시 사림들이 서로 교유하며 시를 지어 읊으며 노닐던 곳이다. 정자는 봉화읍 거촌 2리 황전 마을 앞에 남향으로 들어서 있다. 정자 전면에 잇닿아 네모 형태의 큰 연못이 있고, 연못에는 연이 가득하다. 정자 오른편에는 마을로 들어가는 길 건너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중심으로 큰 나무들이 나무 높이만큼 큰 바위들 사이사이와 뒷산으로 연결되는 언덕 위로 늘어서 있다.
  • 제목
    쌍벽당(雙碧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쌍벽당은 거촌리 광산김씨 종택인 쌍벽당 김언구의 종가에 딸린 정자이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된 거촌리 쌍벽당은 정자 쌍벽당을 포함한 김언구 종가의 여러 부속 건물을 포함하여 일괄 지정된 것이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쌍벽당은 김언구 종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1864년(고종 1) 남쪽 날개 3칸을 고쳤고, 1892년(고종 29) 안채를 크게 수리하면서 외당(外堂)을 별도로 세웠다고 한다. 지금 쌍벽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별당은 이때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행랑채에 우뚝 솟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안채에 달린 사랑방이 마주 보인다. 중문채와 사랑채가 맞닿는 부분에 중문이 있는데 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에 넓은 대청이 있다. 이 넓은 대청이 안채를 도드라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안채의 동쪽 사랑채보다 뒤쪽에 별당인 쌍벽당이 있고, 그 뒤쪽에는 사각형으로 담을 쌓아서 사당을 세웠다. 이 가옥은 조선 전기에 건축되어 후기에 두 차례에 걸쳐 중수 하였으나 평면과 구조의 중요 부분은 비교적 옛 모습을 잘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제목
    봉산리사(鳳山里社)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봉산리사 건물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당이고, 다른 하나는 리사(里社)이다. 리사란 마을 단위에서 건설된 작은 규모의 서원이라고 보면 된다. 서원에 비해서는 교육기능이 약화되어 있다. 사당은 서쪽으로, 리사는 동쪽으로 조금 사이를 띄워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의 사림들이 황파 김종걸을 마을의 선현으로 제사하고, 그 학덕과 행의를 따라 배우는 기지로 삼기 위해 지은 배움터이다.
  • 제목
    구양서원(龜陽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구양서원의 공간은 서원 영역, 주사 영역, 사당 영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 건물들이 동서 방향으로 펼쳐져 있다. 서원 영역은 좁은 골짜기 전체에 자리하고 있고, 각진 화강암 석재를 4줄로 쌓아올린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서원 정문채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로 가운데 솟을대문에는 진덕문(進德門) 현판이 걸려 있다. 강당은 중앙 2칸은 마루, 좌·우의 각 1칸씩은 방으로 되어 있다. 강당의 마루 앞쪽 처마 밑으로는 ‘구양서원’ 현판이 붙어 있고, 강당의 마루 뒤쪽 지붕 아래로는 ‘염수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 제목
    의성김씨 경암헌고택(義城金氏 ?庵軒古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의성김씨 경암헌고택은 사랑채, 문간채, 안채, 좌·우 부속채, 사당 등 5채의 건물이 서로 어울려 있다. 의성김씨 경암헌고택의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이고 6단으로 이루어진 석축 위에 올라서 있으며 앞쪽으로 정면 3칸, 측면 반 칸 정도 넓이의 앞마루를 두고 있다. 행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고, 그 동쪽 끝 칸은 중문이 자리 잡고 있다. 좌·우의 부속채들은 안채의 아래쪽으로 지붕을 들이밀면서 하나로 연결된다. 건물군의 북쪽 일선을 이루는 것은 안채이지만, 그 안채 속으로 좌·우 부속채의 지붕이 밀고 들어온 형상을 취하고 있다. 사랑채의 동북쪽 영역에는 사당이 있다. 사당은 바깥마당의 동북쪽 끝에 조금 높은 기단을 마련하여 올라앉아 있으며, 울타리 없이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다.
  • 제목
    우계이씨 공북헌(羽溪李氏 拱北軒)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우계이씨 공북헌은 이수형이 낙향 후 거처하고자 지은 집인데, 단종에 대한 충절의 의미가 건물 구조 속에 담겨 있다. 정면이 좁고 측면이 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건물은 남향으로 지어졌는데, 실제로는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 제목
    도계서원(道溪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도계서원은 사당과 서원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사당 영역은 그리 넓지 않고, 건물은 조금 높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구조이다. 측면의 경우, 칸 수는 3칸이지만, 칸의 너비는 반 칸 정도로 아주 좁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1칸 반의 규모인 것이다. 서원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정면 4칸 중 중앙의 2칸은 마루이고, 좌·우의 각 1칸은 방이다. 건물 앞으로 나서 있는 기둥이나 건물 속에 포함되어 있는 기둥이나 모든 기둥은 다 원형이고, 상당한 굵기의 싸리나무로 만든 기둥이다. 기둥들은 원형으로 잘 다듬어진 주초 위에 올라서 있다.
  • 제목
    삼계서원(三溪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삼계서원은 지역유림이 지역 선현인 충재 권벌을 제향하기 위한 묘당으로 지었다가 지역의 선후배가 모여서 학문을 닦고 도의를 탁마하기 위한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서원은 크게 서원 영역과 주사 영역으로 나뉜다. 주사는 서원의 서쪽 울타리 밖에 붙어 있다. 서원은 3선으로 나뉜다. 정문 영역, 강당 영역, 사당 영역이다. 정문의 동쪽으로는 유허비각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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