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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제목
    기양서당(岐陽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기양서당은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당으로 유의손과 유복기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전주유씨 수곡파의 세덕사이다. 처음에는 유복기가 1615년(광해군 7)에 서재로 건립하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었으나 1716년(숙종 42)에 후손들이 서당으로 새로 지었다. 그 후 사당인 추원사를 세워 1780년(정조 4) 유복기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1806년(순조 6)에 유의손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원래는 안동시 무실마을 남쪽 산기슭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현재의 위치에 옮겨가 보수하였다. 강당인 역락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 건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2칸의 방이 딸려 있다. 추원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 제목
    만우정(晩愚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만우정은 조선시대 병조참판을 지낸 정재 유치명이 학생을 가르치던 곳으로 1885년(고종 22)에 건립된 정자이다. 당초 임하면 사의동에 위치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8년 이곳으로 같이 옮겨진 정재종택의 오른쪽에 있다. 만우정은 팔작기와집이며 장식성이 없는 간결한 구조를 보여준다.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을 두어 왼쪽 칸을 방으로 꾸미고 오른쪽 2칸은 마루를 시설하였다. 규모가 작고 꾸밈새가 검소하지만 앞면에 큰 누마루를 두어 그런대로 별당으로서의 여유와 운치가 있는 집이다. 원래 널찍한 후원 터에 담장돌림 없이 산기슭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아 별당 중에서도 매우 여유 있는 배치 형식을 보여준다. 현판은 대원군의 친필이다.
  • 제목
    안동김씨 보백당종택(安東金氏 寶白堂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보백당종택은 안동에서 동남쪽으로 내려가다 길 왼편에 묵계리의 선항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묵계리는 조선시대 청백리로 알려진 보백당 김계행의 마을로, 김계행은 연산군 때 관직에서 물러난 후 경치 좋은 이곳에 은거하였다. 이 집은 대문칸인 행랑채와 본채인 口자 기와집과 사당으로 이루어져있다. 보백당은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보이는 건물인데, 현재 이 건물은 조상의 제사를 받드는 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당은 口자집의 왼쪽에 위치하며 흙돌담을 두룬채,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에 풍판이 달려있다. 행랑채는 가운데 칸에 솟을대문을 두고 좌우 측면에는 방을 꾸민 정면 5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다. 당호의 유래인 보백당은 욕심에 물들지 않는 맑고 깨끗한 마음을 보물로 삼는다는 뜻이다.
  • 제목
    묵계서원(默溪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묵계서원은 묵계마을의 옛 고갯길을 올라 왼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보백당 김계행과 응계 옥고를 봉향하는 서원으로 1687년(숙종 13)에 창건되었다. 보백당 김계행은 조선 초기 성종 때 대사성을 역임,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헌이다. 응계 옥고는 세종 때 사헌부 장령을 지낸 바 있다. 1869년(고종 6)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뒤에 강당과 문루인 읍청루과 진덕문, 동재 건물 등을 복원하였다. 또한 서원 옆에 보백당 선생 신도비와 비각을 건립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을 마루로 꾸미고, 좌우에 온돌을 들인 일반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서원 좌측에는 이를 관리하는 정면 6칸, 측면 5칸의 口자형 주사가 있다.
  • 제목
    만휴정(晩休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만휴정은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보백당 김계행이 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한 정자이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 건너 산골짜기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 위로 폭포를 동반한 계곡물이 흐르는데 정자는 이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계행은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현재 소산의 설못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옆이어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게 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정자의 전면 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 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난간을 돌렸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으로 처마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다소 변형된 듯 일부는 조선 후기 양식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 제목
    송정(松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송정은 병자호란 뒤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와룡산 아래에 있는 도연폭포 근처에 와룡초당을 지어 40여 년 동안 절의를 지키고 후진 양성에 이바지한 표은 김시온을 추모하기 위해 1679년(숙종 5)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 건물은 1949년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던 것을 1959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1988년 임하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겨졌다. 원래는 동북쪽 200m 전방에 도연폭포가 있었고, 뒤쪽에는 와룡산이 누워 있었으며, 건물의 정면 강 가운데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 산이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옮겨지는 바람에 원래의 정취가 사라진 것이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막돌기단을 설치한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을 세웠다. 평면은 6칸 중 4칸을 대청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2칸에 온돌방을 들였다.
  • 제목
    의성김씨 운암종택(義城金氏 雲岩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운암종택은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에 자리하고 있다. 청계 김진의 셋째 아들인 운암 김명일 선생의 종택이다. 이 집은 1754년(영조 30)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암종택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된 가옥으로 평면은 사대부가의 □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침은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일자형을 취하고 있으면서 좌우에 건물을 달았다. 이 집의 특징은 안채와 사랑채가 엄격히 분리된 평면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안채는 일자형을 중심으로 좌우 익사를 달고 중문 쪽으로 방과 광을 연결시켜 평면이 □자형을 취하고 있으며 사랑채는 안채의 평면에서 완전히 벗어나 따로 돌출되게 지어 하나의 독립된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운암종택의 사랑채는 넓은 사랑마당을 앞에 두고 있다. 사랑마당은 잔디를 깔아 정갈하게 가꾸었으며 종택으로 들어오는 대문은 만들지 않았다. 입구에서 볼 때 사랑채는 안채의 오른쪽으로 비껴 세워져 있다.
  • 제목
    약계정(藥溪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약계정은 현종 때 영릉참봉을 지낸 약계 권순기가 학생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원래는 반변천 옆에 있었으나 수해로 유실되어 1897년(광무 2) 마을 안으로 옮겨져 보존되어 오다가,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길안면 용계리에서 1989년 현 위치로 다시 옮겨졌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집으로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둥근기둥과 각기둥을 사용하여 건립한 검소한 정자이다. 정면과 양 측면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정자로서의 모양을 갖추었으며 마룻바닥을 지반에서 5자 정도로 높게 하여 누마루와 같은 느낌을 준다. 뒤쪽 3칸은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나 4짝들문을 달아 마루방으로 꾸몄다. 양 툇간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여닫이문을 달았으나 마루 쪽으로는 들문이 설치되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게 배려하였다.
  • 제목
    호계서원(虎溪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호계서원은 1575년(선조 8) 사림들이 여산촌 오로봉 아래 백련사 절터에다 세운 서원으로 퇴계 이황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학을 강론하였다. 원래는 풍광이 아름다운 월곡면 도곡동 낙동강 굽이에 안겨 있었는데, 1973년 12월 안동댐 수몰로 안동호에 자리를 내주고 지금은 임하면 임하동으로 옮겨져 있다. 1605년(선조 38) 대홍수로 유실되자 다시 지었다. 1620년(광해군 12) 이황의 제자인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선생을 함께 모셨다. 1676년(숙종 2)에는 ‘호계’라는 현판이 내려졌으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현재 남아 있는 강당만 새로 지었다. 모두 90여 칸으로 안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원이었으나, 지금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강당과 10여 칸 규모의 주사만이 보존되고 있다.
  • 제목
    의성김씨 양동댁(義城金氏 良洞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의성김씨 양동댁은 안동시 임하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8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보통 수산재나 지례동 양동댁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고택이다. 지촌 김방걸의 형인 김방형 공의 자택으로 1663년(현종 4)에 임동 지례에 세웠으나 1988년 현재의 위치에 옮겨지었다. 수산재라는 명칭은 김방형의 후손이자 현재 가옥의 소유자인 김호원의 증조부 수산 김병종의 아호를 따서 붙인 것이다. 현재 가옥의 구성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되어 있으며 주위는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가옥의 평면은 □자형으로 취하고 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홑처마이다. 이 가옥은 안동지역의 일반적인 주택 양식을 간직하면서도 안채의 고방이나 사랑채 못방의 우물마루 구성에 독특한 면을 보여준다.
  • 제목
    의성김씨 오류헌(義城金氏 五柳軒)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오류헌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자리하고 있다. 지촌 김방걸의 셋째 아들인 목와 김원중이 분가했을 당시인 숙종 4년(1678)에 건립한 가옥이다. 이 건물이 원래 있었던 곳은 지례리 천곡이다. 옛 집터는 서북쪽에서 뻗어 내린 산세를 의지하여 동남에서 서북간으로 흘러가는 반변천을 거슬러 바라보는 곳으로 가옥은 동남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90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오류헌은 전형적인 반가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ㅁ자형의 주택이다. 안채는 건립할 당시의 건물로 추정되나 사랑채는 현 소유자인 김원택의 할아버지가 1920년에 크게 개축한 것이다. 이 가옥은 사랑마당, 안마당, 뒷마당 등 마당의 성격에 따른 구분이 건물과 담장으로 명확하게 되어 있어 조선시대 주택의 내외 생활구역의 구분을 위한 공간구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 제목
    사빈서원(泗?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사빈서원은 청계 김진과 그의 아들 5형제의 유덕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685년(숙종 11)에 사림과 자손들의 공동의견으로 세워졌다. 1709년(숙종 35) 동구밖 사수가로 옮기고 ‘사빈서원’이라 하였다가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1882년(고종 19) 사림과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설치되었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해 임하면 사의리에서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는 강당과 주사만 남아있다. 강당은 정면6칸, 측면2칸의 제법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건물 정면에는 ‘경덕사’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것은 사당의 현판을 강당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강당은 많은 변형과 중수 등의 흔적이 있으나, 주사는 안동지방의 평면양식인 ㅁ자평면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고 변형이나 개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원형보존이 양호한 편이다.
  • 제목
    선유정(仙遊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선유정은 청계 김진이 지어 셋째 아들 운암 김명일에게 내려준 정자이다. 김진의 본관은 의성으로 호는 청계이다. 부암서당과 임천서당 등을 열어 다섯 아들을 비롯한 문중 자제들과 근처의 젊은이들을 가르치며 고장에 면학의 기풍을 일으켰다. 이 정자는 임하리에서 신덕리로 넘어가는 길목에 오미산 둔덕의 풍광이 빼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반변천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의 위치는 임하현 동쪽인 길안면 용계리 도연 선암 앞에 있었으나 해방 후 혼란기에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 규모는 6칸 겹집이었다. 지금의 선유정은 임하댐 건설시 1987년 현 위치에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좌측의 4칸은 마루로 꾸미고, 우측의 2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 제목
    의성김씨 지촌종택(義城金氏 芝村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지촌종택이 있었던 지례마을은 예로부터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례란 지명도 원래는 뛰어난 풍경에 아름다운 풀이 많은 곳이라는 뜻이었으나 후에 예절을 잘 아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변하였다.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시조는 조선 중기 때 대사헌을 지낸 지촌 김방걸이다. 이후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이 유서 깊은 마을은 안타깝게도 1978년 임하댐이 세워지면서 종택을 비롯한 지촌 선생의 유적들을 원위치에서 200m 올라간 마을 뒷산에 모아 새로운 마을을 조성하였는데, 바로 지금의 지례예술촌이다. 경내에는 지촌종택을 포함하여 지촌제청과 지산서당 등 3점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금은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촌종택은 □자형의 정침과 방앗간, 별묘, 곡간, 사당, 대문간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 제목
    지산서당(芝山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지산서당은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숙종 때 대사헌을 지낸 지촌 김방걸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800년(정조 28) 후손 및 지방사림의 발의로 건립되었다.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1926년 복원된 바 있으나 임하댐 건설로 말미암아 1987년 임동면 망천동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남서향이며 정면 5칸, 측면 2칸반의 전퇴칸을 둔 강당형 건물이다. 중앙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되고 사면에 퇴마루를 두었다. 그리고 마루전면에 분합들문을 달아 마루방을 열고 닫게 만들고 방과 마루 사이에 분합들문을 두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일제시대에 복원된 건축물로서 수법이 매우 치밀하고 짜임새가 있다.
  • 제목
    임하구곡(臨河九曲)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시 임하면 내앞(천전)의 반변천 건너에 있는 백운정으로부터 상류를 거슬러 옛 망천동, 사의동, 박곡리, 악사리, 길안면 용계리의 도연과 선유정 일대에 이르는 반변천 양쪽 기슭을 임하 구곡이라고 한다. 그 일대에는 내앞 의성김씨 문중의 옛 유적이 널리 퍼져 있는데, 아래위 처음과 끝은 백운정과 선유정이며 모두 청계 김진의 유적이다. 지금은 백운정, 임천서원, 사빈서원, 송석재사, 선유정, 표은유허 등이 남아 있는데 원래 위치에서 옮겨진 유적이 많다. 또한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경관도 많은데 망천, 칠탄, 송석, 선창, 도연폭포 등이며 가뭄시 가끔 수면 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임하구곡은 정자, 서원, 재사, 여울, 폭포 등 인공물과 자연경관이 잘 어울려 있는 명승지이다. 구곡에 관련한 기사는 『영가지』와 『택리지』의 기록이 대표적이다.
  • 제목
    고산서원(高山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에 있는 서원으로 이상정이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하여 1768년(영조 44)에 창건한 고산정사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고산서원은 1789년(정조 13)에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지방 선비들이 건립하였으며, 창건된 이후 선현 제사와 지방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상정은 이색의 15대손으로서 이황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제자만도 273명이나 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그 이후에는 향사만 지내왔다. 1977년부터 다시 부속 건물들을 중수하고, 1985년부터 유림의 공의로 이상정의 아우인 이광정을 배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었다. 경내에는 경행사, 호인당 등 9동의 건물이 있다.
  • 제목
    귀암정사ㆍ생담정사(龜巖精舍, 笙潭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귀암정사는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에서 고운사 방향의 산 중턱에 있다. 경상북도기념물 제94호로 지정되었다. 오우당 김근의 덕행을 추모하고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김근은 진사시에 합격하고도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몰두하여 장현광이 칭찬해 마지 않았던 유학자이다. 의성김씨 귀미파 일족이 양양, 진성, 안망을 거쳐 1615년(광해군 7)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으며, 김근의 6대손 김굉이 1791년에 재사를 지었다. 1793년에 별묘를 증축했고 1795년(정조 19) 가을에 완공했다. 당시에는 사당인 영모사, 동재인 치각, 서재인 양정, 강당인 강수 등 모두 20여 칸 규모였으나 현재는 사당인 영모사와 정사만 남아 있다.
  • 제목
    낙암정(洛巖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낙암정은 낙동강변의 자연 경관이 아름답게 보이는 낙연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1498년(연산군 4)에 배환이 처음 건립하였으며, 1813년(순조 13)에 다시 지었다. 그 후 퇴락하여 1881년(고종 18)과 1955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낙동강을 향하여 서향으로 정좌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막돌기단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왼쪽 온돌방 쪽에는 각기둥을 세운 홑처마, 팔작지붕의 누각 형식 구조이다. 대청마루는 축대 위에서 1m 이상 허공을 두어 자연 통풍을 이용한 방습을 고려하였으며, 전면을 개방하고 대청을 뽑아내었다. 온돌방문은 전면에 걸이쇠를 두어 공간을 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낙암정은 조선조의 전형적인 정자 양식으로 그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 제목
    대구서씨 소호헌(大邱徐氏 蘇湖軒)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소호헌이란 당호는 고려시대 말기 마을에 살던 소시랑이라는 사람의 이름과, 마을 앞에 호수가 있어서 붙여진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집은 보물 제47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물을 지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시대 중종 때의 선비인 서해가 거처한 집이라고 한다. 본래 이명의 다섯째 아들로 청풍군수를 지낸 이고가 분가한 주택인데, 사위인 서해에게 물려줬다고 전해진다. 소호헌은 단층 목조로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별당 건축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지만 부속된 방은 맞배지붕으로 건물 전체의 평면은 T자형이다. 동쪽의 건물은 서해의 아들인 서성의 태실이다. 건물의 세부 양식에 나타난 오래된 수법은 조선시대의 민가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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