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영역 열기

krpia

도움말
도움말 검색 도움말

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제목
    안동김씨 삼소재종택(安東金氏 三素齋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소산의 옛 이름은 금산촌인데 병자호란 때 청음 김상헌 선생이 낙향하여 은거할 때에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을 따서 소산으로 고쳤다고 전한다. 검소하고 깨끗한 선생의 성품이 마을 곳곳에 깃들어 있는 곳이다. 선안동김씨 시조의 18대손인 김용추가 세운 종택으로 당호를 ‘삼소재’라 한다. 삼소재는 용추공의 5대손인 김종락의 당호이다. 이 집은 1674년(현종 15)에 건립하였으며, 1985년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6호로 지정되었다. 건물의 배치는 마을 중턱의 완만한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앞에 화단을 꾸미고, 그 뒤에는 □자집을, 오른쪽에는 사당을 지었다.
  • 제목
    삼귀정(三龜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삼귀정은 안동김씨 소산 입향조 김혁의 11대손 김영전이 지례 현감으로 있을 때 88세 노모인 예천권씨를 즐겁게 하려는 효심에서 그의 아우 김영추, 김영수와 함께 1495년(연산군 1)에 건립한 정자이다. 그간 몇 차례 중수한 것으로 보이나 1947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정자는 동오라 부르는 언덕의 머리에 앉았는데 동서남의 세 방향은 풍산들이라 조망이 시원하게 틔어 있으며, 남쪽에는 곡강이라 하는 낙동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어 절경에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정자의 토석담 밖에는 노거수가 몇 그루가 둘러 서 있어서 더욱 운치를 돋우고 있다. 당호는 이곳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3개가 있어 붙인 것으로 거북이는 십장생 중의 하나이므로 어머니가 거북이처럼 오래 살도록 기원하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조선 초기 정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제목
    청원루(淸遠樓)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청원루는 중종 때 평양서윤을 지낸 김번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건립한 건물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굴욕적인 강화에 반대한 김상헌이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후 1643년(인조 21) 다시 수리하고 “청나라를 멀리 한다.”는 의미로 청원루라는 당호를 붙였다 한다. 좌우의 건물은 중층으로 꾸미고 몸채 부분은 기단을 높게 조성한 후 단층으로 앉힌 다락집 형상으로 독특한 ㄷ자형 평면을 취하고 있다. 몸채 부분은 대청마루를 중앙에 두고 양 툇간에 온돌방을 둔 전형적인 형식이다. 특히 몸채 대청을 앞면에 2자 정도 폭으로 한단 낮게 하여 마루를 2단으로 구성시킨 점이 눈에 띤다. 중층과 단층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건물을 구성한 점이 돋보이는 누건물이다.
  • 제목
    풍산김씨 유경당종택(豊山金氏 幽敬堂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오미동은 풍산김씨의 집성촌으로 이곳에 정착한 것은 조선 초기 풍산김씨 시조 김문적의 8대손 김자순 때부터였다고 한다. 그때는 마을 이름을 오릉동으로 불렀으며, 오묘동으로 고쳤다가 유연당 김대현의 아들 5형제가 과거 급제한 다음 마을 이름을 오미동이라 불렀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8호로 지정된 이 종택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고, 1600년에 김봉조가 다시 건립한 것으로 오미동 풍산김씨의 큰 종가이다. 유경당은 풍산김씨 종택의 윗 사랑채를 이르는 당호이며, 집 전체를 가리킬 때는 유연당종택이라 한다. 유경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잠암 김의정의 당호이다. 유연당은 김의정의 손자인 김대현의 당호로 편액은 현재 영주시 휴천동에 있는 망와종택에 걸려 있다. 건물의 구성은 대문채와 몸채인 口자 집, 그 좌측에 있는 아래 사랑채와 口자 집 뒤에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목
    오미동 참봉댁(五美洞 參奉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중요민속자료 제179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학암 김중휴가 분가할 때 세운 반가주택으로, 영감댁과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정면 8칸, 측면 4칸의 口자형 집이며, 전체 20여 칸으로 정면에는 솟을대문을 갖추었다. 이 솟을대문을 갖춘 문간채와 정침은 남향하고 있고, 문간채와 정침 사이에 사랑채로 사용되는 학암정이 정침의 우측 앞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와 분리되어 있다. 정침의 우측 앞에 자리한 ‘학암정’의 현판을 단 정자를 큰 사랑채로 사용하고, 정침의 좌측면에 작은 사랑채를 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안채의 우측에는 또 다른 중문을 내어 밖에서 보면 우측에 4칸의 고방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호는 김중휴가 제릉참봉을 지냄으로써 ‘참봉댁’이라 하였다.
  • 제목
    도림강당(道林講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도림강당은 안동시 풍산읍 오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유연당 김대현과 그 자제 8형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추원사와 그에 딸린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원사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약 350년 전 현 사당의 뒤쪽 절골에 건립되어 있던 것을 도림강당 건립 시 이곳으로 이건하였다고 하며, 고직사는 사찰 암자 건물을 뜯어다 활용하여 건립하였다 한다. 강당은 1805년(순조 5)에 세웠으며 사당은 그 이듬해에 세운 것이다. 건물은 지붕 구성이 독특하여 맞배지붕의 양 끝에 다시 맞배지붕이 직교하여 전체적으로 工자형의 용마루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工자형의 지붕은 향교의 명륜당이나 서원의 강당에서 간혹 사용되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대청 상부는 5량가로 자연스럽게 휜 대량을 놓고 그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제형 판대공 위에 소로를 곁들여 마루도리를 받고 있다. 강당은 조선 후기 건물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고, 평면에 비하여 지붕 구조가 특이한 독특한 외관을 보여주고 있다.
  • 제목
    예안이씨 충효당종택(禮安李氏 忠孝堂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집은 예안이씨 16대손 이전의 둘째 아들 이홍인의 종택으로 보물 제553호로 지정되어 있다. 뒤로는 나지막한 야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드넓은 풍산들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이홍인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늙은 몸으로 의병을 일으켜 풍천 구담에서 왜적과 싸우다 진중에서 순국하였으며, 그의 8대손인 이한오는 효행으로 이름을 남겼다. 충효당이란 당호는 바로 이 두 사람의 충과 효를 기리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또한 충과 효를 겸비하여 쌍으로 몸을 닦았으므로 별당을 쌍수당이라 하였다. 전체적인 배치는 건물을 바라보며 오른편에 충효당 현판이 걸려있는 口자형의 정침과 왼편에 쌍수당과 백원당의 현판이 걸려있는 정자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평면은 40여 칸이다.
  • 제목
    침류정(枕流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침류정은 세종 때 병조판서와 청백리를 지낸 야소헌 이화의 정자이다. 풍산읍 하리의 일성당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면 어필 영정각이 있고 그 뒤쪽 언덕 위에 정자가 있다. 원래 이 정자는 풍산 입향조인 이웅과 관련이 있었는데, 풍산읍 소산리 설못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이후 1899년 지산 기슭으로 옮겨지었고, 1925년 현 위치로 이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호는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를 삼는다는 뜻을 잘못 해석한 중국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원래는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돌로 베개를 삼는다는 뜻으로 자연 속에 유연자적하는 군자의 기상을 뜻한다. 내부에 걸린 침류정중수기는 1925년에 이화의 후손 이학로가 지었다.
  • 제목
    풍산유씨 양진당(豊山柳氏 養眞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양진당은 하회마을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풍산유씨 대종가인 이 건물은 겸암 유운룡의 종택이다. 당호를 양진당이라 부른 것은 겸암의 6대손인 유영이 종택을 크게 중수하였고 겸암정사와 능동에 있는 재사를 보수하였으며, 문중 족보를 완성한 업적이 커서 그의 호를 따서 양진당이라 이름 하였다. 당호는 사랑채의 대청에 걸려 있어 밖에서는 볼 수가 없다. 풍산유씨 대종가인 양진당은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口자 평면의 안채에 사랑채가 덧붙여진 구성을 보여준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당당한 모습의 사랑채가 유서 깊은 대종가의 기상을 보여주고 있다.
  • 제목
    풍산유씨 충효당(豊山柳氏 忠孝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보물 제41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충효당은 서애 유성룡의 종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애 선생은 40여 년의 관직생활을 청렴하게 마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해서 살다가 풍산 서미동의 초가삼간에서 돌아가셨다. 이에 후손들이 이 건물을 지어 그의 학문과 업적을 기렸다. 당호를 충효당이라 한 것은 선생께서 평소에 자손들에게 강조하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씀을 받들어 이름지었다. 이 건물은 풍산 유씨 대종가인 양진당에서 건너다 보이는 서향한 터에 자리잡고 있다. 하회마을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때 충효당은 남촌을 대표하는 집이다. 건축물의 구성은 행랑채 12칸, 사랑채 12칸, 안채 27칸, 사당 6칸으로 전체 57칸이다. 종택 내에 서애의 유물전시관인 영모각이 마련되어 있다. 특징적인 점은 솟을대문을 한 행랑채가 여느 건물과 달리 12칸의 크기로 꾸며져 있다는 것이다.
  • 제목
    하회주일재(河回主一齋)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주일재는 하회마을을 남촌과 북촌으로 나누었을 때에 남촌에 자리 잡고 있다. 서애 유성룡의 증손자 유만하가 충효당에서 분가할 때에 지은 것으로 그의 아들 주일재 유후장이 증축하였다. 건물 전체는 월오헌이라 하고, 주일재 편액은 사랑채에 달려 있다. 전체 구성은 ㅁ자형의 평면을 하고 있으나 다른 집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독특한 양식을 볼 수 있다. 사랑채에 중문채가 달렸고 중문채에는 작은 사랑방 2칸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안채와 곳간채,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담장을 쌓아 터진 곳을 막아 주어 전체적인 평면 구성은 ㅁ자형을 갖추고 있다. 특이한 점은 중문채의 앞에 내외담을 쌓았는데 이는 외부에서 중문이 열려 있어도 안채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에서이다.
  • 제목
    풍산유씨 화경당(豊山柳氏 和敬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은 1862년(철종 13)에 지은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채를 두루 갖춘 전형적인 양반집으로 중요민속자료 제84호로 지정 되어있다. 하회마을은 마을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크게 북촌과 남촌으로 나누고 그 중에서 북촌을 대표할 수 있는 집으로 양진당과 화경당을 들 수 있다. 그래서 북촌을 대표하는 집이라 하여 북촌댁이라고도 부른다. 사랑채에 걸려 있는 화경당이라는 당호는 유도성의 할아버지인 유이좌가 지었다. 건물을 보면 먼저 골목에 면한 우람한 담장과 솟을대문이 눈에 들어온다. 그 솟을대문과 좌우의 대문채가 유난히 장대하여 압도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향으로 앉은 이 집은 여성 공간인 안채가 남성 공간인 사랑채 보다 규모가 장대한 것이 특징이다.
  • 제목
    풍산유씨 하동고택(豊山柳氏 河東古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중요민속자료 제177호로 지정된 이 집은 용궁 현감을 지낸 유교목이 1836년(헌종 2)에 세웠다. 당호를 하동고택이라 부르는 것은 하회마을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서 유래하였다. 하동고택은 하회마을을 북촌과 남촌으로 경계 짓는 골목길의 시작점에 자리 잡고 있다. 건축물의 배치는 전면에 문간채를 놓고 뒤편에 ㄷ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를 합하여 전체적으로 口자형이며 그 옆에 방앗간이 있다. 건물의 전체적인 평면은 弓자형이며 좌향은 북향이다. 안채의 앞쪽에 사랑채를 조영하면서 좌우로 중문간채와 사랑마루를 돌출시켜서 날개를 펼친 것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 초가를 덮은 대문과 행랑채는 소박함과 정겨움을 담고 있으며, 디딜방아가 놓인 방앗간이 있어 편안함을 더하는 집이다.
  • 제목
    원지정사ㆍ옥연정사(遠志精舍, 玉淵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원지정사는 1573년(선조 6) 서애 유성룡이 홍문관 재직 중 부친상을 당하자 낙향하여 지내면서 건립한 정사이다. 1781년(정조 5)에 연좌루를 고쳐 지은바 있으며, 1979년에는 전체 보수 정비와 함께 사주문을 신축했다. 건물은 북쪽 북촌댁 뒤편에 동남향하여 화천 건너편 부용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면 담장에 나있는 사주문을 들어서면 마당 좌측에 정사가 있고 그 우측 앞쪽에 연좌루가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반 규모로 세워진 정사는 맨 왼쪽에 1칸 마루를 두고 그 오른쪽에 2칸 온돌방을 놓았다. 3칸 정면 모두에 반칸 규모의 툇마루를 시설하고 마루 전면을 개방하였고, 연좌루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으로 사방을 개방하였다. 계자난간을 돌린 마루 앞으로는 부용대의 절경과 그 좌우측의 겸암정사와 옥연정사 일대를 조망할 수 있고 돌아서는 하회 마을을 둘러 볼 수 있다.
  • 제목
    빈연정사ㆍ겸암정사(賓淵精舍, 謙巖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빈연정사는 겸암 유운룡이 1583년(선조 16)에 건립하여 서재로 사용하던 정사이다. 유운룡은 서애 유성룡의 맏형으로 현재 풍기의 우곡서원과 1996년 이 마을 맞은편에 다시 세운 화천서원에서 모시고 있다. 마을 서북쪽 강둑 길 가까이 얕은 언덕 위에 북향으로 앉아 화천과 건너편 부용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부용대 왼쪽의 겸암정사와 마주하고 있다. 화천 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만송정 소나무 숲은 겸암 유운룡이 심었다고 한다. 당호는 부용대 절벽 아래의 심연을 빈연이라 부른 데서 연유한 것이다. 건물은 전면 담장에 나있는 일각문을 들어서면 앞쪽과 우측에 마당을 두고 좌측 모서리에 배치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왼쪽 1칸에는 온돌방을 앉히고 그 오른쪽 2칸은 모두 대청마루로 꾸몄다.
  • 제목
    화천서원(花川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서원은 부용대 기슭에 자리 잡은 옥연정사 왼쪽에 있는데 만송정 강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겸암 유운룡 선생의 학덕을 기려서 유림들이 현 위치에 세운 서원이다. 1786년(정조 10)에 건립하여 9월에 겸암 유운룡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자인 동리 김윤안과 종손자인 졸재 유원지 공을 배향시켜 100여 년 이상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강당과 주소만 남았다. 그 후,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은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여러 건물을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사당 경덕사, 강당 숭교당, 동재와 서재, 문루 지산루, 원문 유도문이 남아 있다. 사당은 경덕사, 강당은 숭교당이라 하고 좌우로 방이 있는데 왼쪽은 입교재, 오른쪽은 사성재이고, 동재는 존현, 서재는 흥학, 문루는 지산, 원문은 유도라 했다.
  • 제목
    하회16경(河回十六景)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500년이 넘는 세월을 하회마을에서 살아온 풍산 유씨 집안에게는 마을 주변의 모래톱, 바위절벽, 산자락 곳곳에 마을의 역사와 애환이 서려 있는 것이다. 언제 누가 하회 16경을 꼽아 왔는지 알 수 없어도 유성룡의 손자인 유원지가 이를 정리하여 16경을 확정하고 『하회십육경시』를 남겼다. 대표적인 경치로 만송정 앞 모래톱, 겸암정사 서쪽 얕은 산, 옥연정으로 건너가는 나루에 매어놓은 배, 화산에 떠오르는 달, 원지산에 내리는 신령스러운 가랑비, 남산 수봉의 서리 맞은 단풍, 부용대 위에서 호탕하게 부르는 노랫소리, 강 마을의 고기잡이 불빛, 눈 개인 뒤의 만송정 소나무 숲, 강가 너럭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 강 건너 밤나무 동산에 있는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저녁밥 짓는 연기 모습, 부용대 앞 갈모바위에 부딪치는 성난 물결, 맑은 날 겸암정 앞 강물 속에 서 있는 형제바위 등이다.
  • 제목
    병산10경(屛山十景)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병산서원 일대는 강과 산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다가 장마가 지면 외부와 단절되므로 원래 10여 호 만이 사는 한적한 곳이었다. 퇴계학파인 권구는 1716년 전염병을 피해서 가족들을 이끌고 이 마을로 이주하였는데, 그는 이 마을을 병곡으로 고쳐 부르고 자신의 호로 삼을 정도로 주변 경치를 사랑하였다. 그가 병산서원 일대의 풍경을 ‘10경시’로 지었는데 덕암, 영일봉, 한수동, 초초진, 표은굴, 제공천, 월은담, 영귀정, 낙하잠, 인곡이다. 주로 바위, 나루터, 봉우리, 마을 등이다. 권구의 친구인 권덕수는 권구의 10경시에 뒤이어 시를 지으며 이에 호응하였다. 지금은 병산 10경의 정확한 위치조차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로 잊혀졌지만 병산과 낙동강과 병산서원이 만들어내는 경치는 옛 운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제목
    함벽당(涵碧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천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함벽당은 명종 때의 무인인 절충장군 강희철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건립한 정자이다. 그 후 옥봉 권위의 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이 마을에 터 잡고 살던 함벽당 유경시의 소유로 바뀌어 현재 전주유씨 치계파문의 관리 하에 있다. 건립 연대는 17세기로 전해지고 있으나 건물의 양식 등으로 보아 17세기의 건물로 보기는 어렵고, 유경시 사후 100여 년 뒤인 1862년(철종 13)에 대규모의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진입은 서쪽에 세운 사주문을 통하게 하였는데 문을 들어서면 정자가 남향하여 앉아 있고 주변에는 담장을 둘렀다. 정자는 전체적으로 丁자형을 이루고 있고 평지임에도 불구하고 동남쪽에 축대를 높이 쌓아 대지를 조성하여 누마루의 느낌이 들도록 배려하였다.
  • 제목
    안동권씨 송암종택(安東權氏 松巖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송암종택은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자리하고 있는 송암 권호문의 집이다. 마을 안쪽에 있는 창열서원을 바라보면서 농로를 따라가다 산등성이를 돌면 완만한 언덕길 위에 송암종택이 있다. 가옥의 건립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가옥 내 사랑채 오른쪽에 1569년(선조 2)에 권호문이 건립한 관물당이 있다. 관물당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송암종택은 사대부 반가의 건축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남향집이다. 가옥의 평면이 전형적인 안동집 형태인 口자형이며 대문채와 사랑채, 헛간채, 안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안채와 사랑채는 팔작지붕이며 나머지 부속 건물은 맞배지붕이다. 중앙의 대문은 솟을대문으로 만들어 가옥의 위엄과 웅장함을 살렸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