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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제목
    창열서원(彰烈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창열서원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단계 하위지의 학문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 되었다. 1804년(순조 4)에 창열사를 지어 하위지의 위패를 봉안하고, 1809년(순조 9)에 안동시 서후면 송야리에 창건하였다. 그 뒤 사림의 중의로 안동시 서후면 이개리로 이건해서 춘·추향을 받들어오다가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989년에 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현 위치에 다시 세워져 매년 음력 9월 2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창열사, 4칸의 숭열당, 3칸의 성안재, 2칸의 전사청, 3칸의 신문, 3칸의 유의문 등이 있다.
  • 제목
    의성김씨 학봉종택(義城金氏 鶴峯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학봉종택이 있는 서후면 금계리는 ‘천 년이 지나도록 패하지 않는’ 명당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지세가 거문고처럼 생겼다 하여 ‘금지’라 불렀으며, 학봉 김성일이 이곳으로 옮겨와 검재로 고치고 한자로 금계라 적었다. 종택은 원래 현재의 위치에 지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잦자, 1762년에 현 위치에서 100m 가량 떨어진 현재의 소계서당이 있던 자리에 새로 종택을 건립하고 종택의 자리에 소계서당을 지었다. 그러나 1964년에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옮겼다. 이때 종택의 사랑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 소계서당으로 사용하게 하고 현 위치에 있던 소계서당을 종택의 사랑채로 사용하고 있다. 종택의 규모는 뱀 사(巳)자형의 안채, 풍뢰헌, 사당, 유물전시관인 운장각,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다.
  • 제목
    소계서당(邵溪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의 학봉 김성일 종가에서는 1762년에 현재의 소계서당이 있는 자리에 종택을 새로 짓고, 현 종택 자리에 소계서당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옮겼는데, 이때 종택의 사랑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어 소계서당으로 사용하게 하고, 현 위치에 있던 소계서당을 종택의 사랑채로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구 종택의 사랑채가 현 소계서당이 되고, 구 소계서당이 현 종택의 사랑채가 된 것이다. 학봉 김성일 집안의 후손 서산 김흥락이 『소계서당기』를 저술하여 그 사정을 전하고 있다. 김흥락은 퇴계 이황의 뛰어난 제자였던 학봉 김성일의 11대 종손으로서 가문의 학문적 전통이 깊었다.
  • 제목
    동호정(東湖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동호정은 동호 변영청이 안동시 법흥동의 낙동강가인 동호에 세운 정자이다. 원래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현재는 서후면 금계리로 옮겨져 있다. 변영청은 본관이 원주로 퇴계 이황의 문인이다. 임청각을 세운 이명의 손자사위로 강직한 성품과 선정을 베풀어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정자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집으로 앞쪽 반 칸은 누마루를 꾸미고, 가운데 칸은 마루로, 좌우 협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현판의 글씨는 강약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시원한 느낌이며 물이 흐르는 듯 한 자연스러움이 있는 행서체이다.
  • 제목
    경광서원(鏡光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경광서원은 1568년(선조 1)에 유정사 자리에 서당을 창건한 뒤 1662년(현종 3)에 정사로 이름을 바꾸어 배상지와 이종준의 위패를 봉안했다. 1649년(인조 27)에 다시 춘파리사를 창건하여 이종준과 장흥효를 모셨으며, 1686년(숙종 12)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세 사람의 위패를 옮겨서 함께 제사지냈다. 그 뒤 선현 제사와 인재 양성에 일익을 담당하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문에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1873년에 제사만 지내왔다. 그러다가 1972년에 지방 유림과 후손들이 발의하여 다시 세워졌다. 주향자인 배상지는 조선이 건국된 뒤 절개를 지켰고, 이종준은 무오사화로 귀양한 사림파 선비이고, 장흥효는 정구의 문인으로 학문이 높은 선비였다. 서원 내의 건물로는 정면 3칸의 맞배지붕 형식을 갖춘 존현사, 정면 5칸의 맞배지붕인 숭교당, 신문, 주소 등이 있다.
  • 제목
    원주변씨 간재종택(原州邊氏 簡齋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원주변씨 종택이 위치한 곳은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이다. 이곳 금계리에는 의성김씨 학봉종택이나 안동장씨 칠계재종택 등 여러 문중들의 종택이 있는 곳이다. 그만큼 풍수지리적으로 길지이고 살기 좋은 곳이다. 종택은 서후면 소재지로 가는 큰길에서 조그만 오솔길로 접어들어 가다가 만나게 되고, 종택 뒷산 언덕 위에는 간재정이 세워져 있다. 당호인 간재는 변중일의 아호이자 정자의 이름이다. 이 종택의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무오사화 직후 변희예, 변희리 형제가 금계에 입향한 것으로 보아 그 이후일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종택의 크기는 정면 6칸 반, 측면 5칸 반이며 팔작지붕에 홑처마이다. 가옥의 평면은 口자형을 취하고 있으며, 사랑마당에서 볼 때 정면 우측에 있는 사랑채가 口자형의 평면에서 반 칸 돌출해 있다.
  • 제목
    광풍정(光風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광풍정이 있는 금계리는 고려 초기 이래 삼태사의 한 사람인 장정필의 후예 안동장씨의 집성촌이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유명한 성리학자요, 김성일과 유성룡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아 영남 학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경당 장흥효가 1630년에 이 위치에 초당으로 건립한 누각이다. 1838년(헌종 4)에 지역의 유림들에 의해 고쳐지어졌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기와집으로 우측 칸을 마루로 놓아 건물 밖의 협문을 들어서서 우측 마루 위의 판문을 열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동북향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마루 공간과 온돌방이 대각선으로 구성된 듯 한 독특한 정자건축이다. 이는 하절기의 외부 환경을 최대한 배려한 환경친화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목할 부분이다.
  • 제목
    도계서원(道溪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도계서원은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에 자리하고 있다. 1687년(숙종 13) 안동권씨 옥봉문중의 후손인 권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방 유림의 공동 결의에 따라 도계정사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냈다. 그 후 선현 제사와 인재 교육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처음에는 도촌에서 서쪽으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으나 훼철된 후, 1928년 권위가 거처하던 만대헌 옛 터에 서원으로 승격하여 다시 세웠다. 그 후 여러 번 중수를 거쳐 1991년 후손들이 묘우인 모현사와 강당인 명륜당을 새로이 수리하고, 동재인 상의재와 홍도문, 주사 등을 새로이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권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모현사와 강당인 명륜당, 신문, 동재, 주사로 구성 되어 있다.
  • 제목
    안동장씨 경당종택(安東張氏 敬堂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경당종택은 천등산 봉정사로 향하는 길을 따라 서후면 사무소가 위치한 삼거리를 지나간다. 원래 종택의 위치는 제월대와 광풍정이 있는 춘파에 있었으나 현재 위치로 옮겨와서 중건한 것이다. 이 종택은 경당 장흥효가 살던 집이며 장흥효는 집 남쪽에 커다란 바위가 있어 제월대라 이름 짓고, 배우는 젊은이와 더불어 이곳을 거닐며 예법을 익히며 사색에 잠겼다. 종택은 정침과 정침의 동북쪽 뒤쪽에 자리한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향하고 있다. 나지막한 울타리가 집을 감싸고 있을 뿐 솟을대문은 없다. 그저 울 사이가 조금 터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바로 사랑채를 마주하게 된다. 구성은 팔작지붕에 정면 6칸, 측면 7칸의 전형적인 口자형 평면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채 공간은 문간채 보다 훨씬 높게 지어 덩그러니 높은 품격을 자아낸다. 사당은 50여 년 전에 옮겨온 후 절 집을 사서 지은 것이다.
  • 제목
    안동권씨 능동재사(安東權氏 陵洞齋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고려 삼태사 중 한 사람인 권행의 묘제를 지내기 위한 곳이다. 1653년(효종 4)에 마루, 고방 등 16칸을 건립하였고, 그 후 1683년(숙종 9)에 경상도관찰사 권시경이 누각 7칸을 추가로 건립하였다. 여러 차례 화재와 중건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른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좌측에 높은 축대를 쌓은 추원루를 전면에 내세워 문루로 삼고, 누문 안의 마당 건너편에 재사와 그 앞 양쪽에 동서재가 튼 口자를 이루고 있다. 동재의 오른쪽에 임사청, 전사청, 주사가 마당을 중심으로 일곽을 이루어 전체 배치가 일(日)자형이다. 재사 건물은 밖에서는 매우 폐쇄적이지만 안에서는 열려 있어 서로 모두 보이게 되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안동지방의 재사 건물 가운데 대표할 만한 건물로 안동권씨의 문중 세력을 상징한다.
  • 제목
    안동김씨 태장재사(安東金氏 台庄齋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은 고려 태조 때의 공신이며 안동김씨의 시조인 김선평의 단소를 지키고 제사지내기 위한 재사이다. 김선평의 단소를 설립한 이후인 1707년(숙종 33)경 단소 동쪽 100보 내에 작은 집을 지었다가 1749년(영조 25)에 재사로 확장하였다. 그러나 식수난과 질병이 겹치자 사헌부지평 양근이 승려의 집을 철거하고 지금의 위치에 터를 닦아 1793년(정조 17)에 28칸으로 중건하고 익실과 문루를 옮겨 지었다. 1913년 4월 주사를 확장하여 10칸으로 중건하였고, 1960년 풍수해가 나자 보수하였다. 현재 일(ㅡ)자형의 누건물인 이상루, □자집 형태의 태장재사, 관리사인 ㄷ자집 형태인 고직사가 남아 있다. 이 3동을 통틀어 태장재사라고 부르며, 모두 목조기와집이다. 안동 지방 재사 중 규모가 크고 각 공간이 용도에 따라 적절하게 구분되어 있다.
  • 제목
    명옥대(鳴玉臺)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명옥대는 1665년(현종 6)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림에서 건립한 정자이다. 봉정사 오르는 길의 왼쪽 계곡 건너에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계곡에는 여러 층으로 된 기암이 있는데, 그 높이가 두어 길이 된다. 그 맞은편 바위 표면에는 ‘명옥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옛 이름은 ‘낙수대’였으나 육사형의 “나는 샘이 명옥을 씻겨 내리네.”라는 시 속의 글귀를 따라 ‘명옥대’로 고쳤다고 한다. 건물은 자연석 초석 위에 둥근기둥을 세우고 누마루를 설치 하였는데 정면 2칸, 측면 2칸의 평면에 계자난간을 두르고 있으며 주변 경광을 감상하기 좋도록 사면 모두를 개방하였다.
  • 제목
    학가산(鶴駕山)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서 봉화 쪽으로 흘러내린 지맥이 한쪽에서는 온혜 쪽으로 내려서면서 영지산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태자산으로 갈라져 나와 서남행하여 학가산 쪽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낙동강의 두 지류, 청량산으로부터 안동으로 흘러내리는 낙강과 영주에서 예천으로 흘러내리는 내성천 사이에 횡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산맥의 흐름 속에 학가산이 우뚝 솟아 있다. 학가산 정상에는 선비의 정신을 닮은 소나무가 긴 세월을 감내하며 버텨 서 있고,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일품인 학가산 하산길에는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하였을 때에 쌓은 것이라고 전해 오는 학가산성을 볼 수 있다. 학이 유유자적 자태를 뽐내며 노는 모습과 닮았다는 학가산은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 안동의 진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 제목
    웅부공원(雄府公園)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의 옛 군청과 법원 검찰청이 있던 부지에 새로이 조성되는 가칭 ‘도심전통테마공원’의 이름은 시민들의 공모로 안동의 옛 이름을 딴 ‘웅부공원’과 ‘문화공원’으로 정해졌다. 관아터로 추정되는 이 공원에는 옛 대도호부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관아의 동헌(영가헌)과 문루(대동루), 시민의 종 등을 복원하였고, 해맞이 행사, 타종식 및 각종 연주회 장소를 제공한다. 이 웅부공원 내에는 관아터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높이 15m, 직경 약 2m의 거목으로 수령이 800여년이 된 느티나무가 있다.
  • 제목
    고성이씨 탑동파종택(固城李氏 塔洞派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댐 진입로의 초입에는 도로 한복판에 늙은 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중앙선 철길 너머에 보물 제182호인 임청각 정침 군자정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중앙선 철길 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과하여 왼쪽으로 들어가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국보 제16호인 신세동칠층전탑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전탑 바로 뒤쪽에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종택 내에는 영모당이 있다. 영남산의 동쪽 기슭에 좁은 계류를 끼고 있는 넓은 대지 위에 자리 잡은 고성이씨 탑동파종택은 안채, 사랑채, 사당, 영모당, 연못, 외문간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뒤꼍의 숲이 우거진 야산과 북정 앞을 흐르는 계류 등의 자연 환경을 잘 살려서 건물을 배치하였고, 연못과 화단 등을 곁들여 조화를 도모함으로써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 저택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 제목
    북정(北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북정은 안동시 법흥동 탑동파종택에 딸린 정자이다. 종택 옆의 작은 개울가로 난 완만한 산길을 따라가면 정자가 보인다. 북정은 조선 후기의 인물인 진사 이종주의 호이자 정자 이름이며, 1775년(영조 51)에 지었다. 정자에 걸린 ‘북정기’ 등을 살펴볼 때 처음에 이 집의 방이 각각 한 칸이었으며, 지붕을 띠나 억새로 엮은 초가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을 연결한 丁자형으로 되어 있다. 구성은 영남산의 산비탈을 깎아 높은 축대를 쌓아 배면 3칸을 앉히고, 다시 축대 앞에 높은 기단을 만들고 기둥을 세워 1칸 크기의 누마루를 만들었다. 누마루는 우물마루를 넓게 만들고, 배면 3칸의 좌우 칸에는 각각 반 칸씩 쪽마루를 설치하여 누마루와 연결하였다. 누마루와 쪽마루에 모두 계자난간으로 꾸며서 밖으로 열려 있게 만들었다.
  • 제목
    고성이씨 임청각(固城李氏 臨淸閣)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임청각 정침은 안동시내에서 안동댐 방면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길 왼편에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낙동강 변까지 임청각이었다고 하니 현재보다 많이 넓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은 50여 칸만이 남아 있으나 본래는 99칸의 대저택이었다. 임청각의 대지 내에는 가장 서쪽에 정침이 있고, 중간에는 별당 정자인 군자정이 있고, 가장 동쪽에는 사당이 있다. 임청각의 정침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용(用)자형의 배치를 가지며 남향을 하고 있다. 남녀를 구별하는 유교적인 인식에 의해 계획되어 있었으므로 정침의 구조는 안방이 있는 안마당을 출입하기 위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폐쇄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정침에서는 한말 의병장이자 만주 독립운동을 이끌던 이상룡이 태어났다.
  • 제목
    군자정(君子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의 대종가인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안채, 중채, 사랑채, 행랑채 등의 건물을 배치하여 채광효과를 높이고 있다. 임청각 경내 오른쪽에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군자정이 위치하며, 군자정의 바로 옆에는 네모난 연못이 있다. 임청각에 딸린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은 양반가의 별당형 정자건축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건물로 丁자형의 지붕과 평면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안동의 정자 특징을 반영하여 정면 2칸에 측면도 2칸인 대청마루가 남향으로 세워졌다. 그 서쪽에 이어서 丁자형으로 온돌방을 부설했는데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의 주위에는 쪽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다. 정자 옆에는 연꽃 연못을 조성하여 군자를 표상하는 연꽃을 심었다.
  • 제목
    안동민속박물관(安東民俗博物館)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민속박물관은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대표 박물관이다. 안동시 성곡동에 위치하여 안동댐 바로 아래의 강변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끼고 있다. 안동문화권의 민속 문화를 조사, 연구, 보존,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주로 생활 물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실내 전시는 안동문화권의 대표적 문화인 유교 문화 중에서 평생 의례, 의식주 생활, 학술 제도, 수공업, 민간 신앙, 민화, 민속놀이를 전시하고 있다. 야외 전시는 흔히 ‘안동민속촌’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전개되는데, 이곳에는 주로 1970년대 안동댐 수몰지역에서 옮겨온 까치구멍집, 선성현 객사 등으로 전통적인 주생활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 외에도 육각정, 홍예교, 물레방아, 석빙고, 월영대 등을 전시하여 안동지역 전통 건축물의 다양성과 특성을 맛볼 수 있다.
  • 제목
    안동 석빙고(安東 石氷庫)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 석빙고는 보물 제305호로 원래 예안면 소재지에서 낙동강 상류를 따라 개설된 청량산행 길에 보이는 산기슭에 있었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1976년 1월 도산면 동부리에서 현위치로 옮겼다. 이 석빙고는 예안의 이매신 현감이 1737년(영조 13)에 부임하여 3년 재임기간 중 봉록을 털어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다.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왕에게 바치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입구를 옆에 가설한 것이 특이하며, 봉토도 완전하여 외부의 모양은 커다란 고분으로 보인다. 안으로는 계단이 있고 중앙에는 배수로가 있다. 4개의 무지개 아치가 천장을 지탱하고 있으며 3곳에 환기 구멍이 있다. 여름에 얼음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서양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이며 우리 조상의 과학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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