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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한국국학진흥원 - 유교넷 http://www.ugyo.net

한국국학진흥원은 도난과 훼손으로 멸실위기에 처해 있는 국학자료를 조사·수집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연구·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입니다. 특히 고문서, 고서, 목판 등 기록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보존,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유교문화와 관련된 기록유산을 DB화하고 문중기탁 자료들을 멀티미디어 요소 형태로 개발하여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 제목
    광산김씨 탁청정종가(光山金氏 濯淸亭宗家)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탁청정 종가는 광산 김씨 오천유적지 경내에 자리 잡고 있다. 경내에서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자 기와집과 정자가 보인다. □자 기와집은 탁청정종가이며, 정자는 종택의 별당 정침 탁청정이다. 탁청정은 오천칠군자 가운데 한명인 김유의 호이자 정자 이름이다. 탁청정종가는 원래 낙동강에 인접한 옛 예안면 오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에 따른 수몰로 1974년에 정자인 탁청정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졌다. 건물은 전면 6칸, 측면 5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안채의 팔작지붕과 바깥채, 좌우 보조건물의 맞배지붕을 연결하여 □자형을 구성하였다. 사랑채에 비해 안채를 높이 지었으며, 안마루의 양식은 양쪽이 2층으로 되어 있다. 이 집은 조선후기에 화재를 당하여 다시 지었는데 현재 22칸이 남아 있다.
  • 제목
    읍청정(?淸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시청에서 도산서원 가는 길에 만나는 큰 한옥 단지가 ‘오천유적지’이다. 유적지는 산중턱을 깎아서 조성하였으며, 앞 골짜기가 호수를 이루고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유적지 위쪽 산기슭에 옮겨 놓은 여러 채의 건물 가운데 읍청정은 조선중기의 학자인 김부의의 호이자 정자이름이다. 현판은 퇴계 이황이 명명한 것인데 ‘읍청정’이란 청량산을 바라보며 마음의 티끌을 씻어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 옛 오천에 자리할 때 청량산을 향해서 읍하는 모습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말도 있다. 정자는 높은 기단 위에 조성된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팔작기와집이다. 공간구성은 정자마루 2칸을 가운데 두고, 그 좌우에 1칸 크기와 1칸 반 크기의 온돌방을 꾸몄으며, 좌측 방과 마루 앞에는 툇마루 3칸을 놓았다.
  • 제목
    침락정(枕洛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침락정은 예조 예문관 검열을 지냈으며 의병대장이던 김해의 아들 매원 김광계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강학소로 건립하여 의병출신의 선비들을 모아 시모임을 열던 정자이다. 1974년 12월 안동댐 수몰로 예안면 오천동 1번지에서 탁청정, 후조당 등의 건물과 함께 현재 위치로 옮겼다. 원래 정자가 위치하던 곳은 배산임수한 강가대지였으며 근처에 수직사를 비롯한 초가 3, 4동이 있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중앙 2칸 마루을 중심으로 좌우에 2칸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다. 정자라기보다 오히려 정사에 가까운 평면으로 대청 뒤쪽 상벽에 ‘운암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건축양식은 팔작지붕을 가진 매우 건실하면서도 소박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뜻있는 유생들의 학습소가 아닌가 싶다.
  • 제목
    탁청정(濯淸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 건물은 광산김씨 예안 오천 입향조인 김효로의 둘째 아들 탁청 김유가 1541년(중종 36)에 세운 종가에 딸린 정자이다. 원래 낙동강에 인접한 예안면 오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인하여 1974년 현 위치로 옮겨졌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성으로 오른쪽 칸은 앞뒤 2칸이 온돌방이고, 그 앞의 4칸 대청은 낮은 누마루를 꾸미고 계자난간을 돌렸다. 측면의 간살이를 정면보다 2척씩 길게 잡고 있어 전체적으로는 정방형에 가깝다. 난간마루는 온돌방의 전면과 측면으로 연장되었으나 연장부의 난간은 누마루 부분과는 달리 평난간이다. 바깥 기둥은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고, 안 기둥은 각기둥이다. 하주를 받친 주초석이 약간 높고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공포의 형태가 매우 고풍스런 영남의 대표 정자이다.
  • 제목
    안동권씨 송소종택(安東權氏 松巢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시 와룡면을 가다보면 이계마을이 나오는데 송소종택은 마을 오른쪽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송소종택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소 권우가 살던 집으로 전해진다. 이 집에는 현재 『이계재사도록』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 종택이라 불리기 전에는 원래 이름이 ‘이계재사’였음을 짐작케 한다. 종택은 ㄷ자형의 아래채와 一자형의 안채가 마주하여 트인 口자형을 이루며, 동 사이의 트인 부분은 담장으로 쌓아 마감하였다. 온돌방과 부엌, 고방, 마구간, 대문 등을 갖추었으며 그 배치 형식이 재사의 배치형식과 같다. 종택 뒤 산비탈에 건립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으로 건물 주변에 담장을 둘렀다. 사당 내부에는 불천위인 송소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종택 아래 밭 가운데에는 이계서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송소 권우의 아버지 권대기의 서당이다.
  • 제목
    전주유씨 삼산종택(全州柳氏 三山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전주유씨 삼산종택은 1982년 12월 1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은 원래 밀양박씨가 살았으나 조선 숙종 때 전주유씨인 유석구가 개척하였으며 그의 아들인 삼산 유정원이 태어난 곳이 전주유씨 삼산종택이다. 종택 안마루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산봉우리 셋이 나란히 보인다. 이것을 보고 대사간 유정원은 자신의 호를 삼산으로 정했다. 그 후 선생의 호인 삼산이 마을 지명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삼산종택은 조선 후기인 1750년(영조 26)경에 건립하여 대문채, 사랑채, 안채, 사당의 4동으로 구성되었으며 1994년 사랑채와 안채의 기단을 자연석으로 교체하고 사랑채의 지붕을 보수하였다. 안채와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口자집 형태를 이룬 안동지방의 일반적인 주거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제목
    진성이씨 경류정종택(眞城李氏 慶流亭宗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경류정종택이 자리한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는 진성이씨 종파가 600년 동안 대를 이어 살아온 곳이다. 마을이 두루 평안하다고 하여 우리말로 ‘두루’로도 부른다. 이 집은 두루마을의 입향 시조인 이자수가 지었다고 전한다. 정침과 별당, 사당, 행랑 등으로 건물이 구성되어 있으며 정침은 집의 평면이 口자형을 이루면서 口자의 측면 외곽으로 마루와 방을 돌출시킨 ‘날개집’이다. 종택의 별당 건물인 경류정은 1492년(성종 23)에 창건되었으며 원래는 주촌 남쪽 2리의 정동이라는 곳에 있었다. 팔작지붕집으로 둥근기둥이며, 일부에 배흘림이 남아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이 경류정이라는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었다. 경류정과 정침 뒤에는 사당이 자리 잡고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이다. 내부에는 불천위 송안군 이정의 신주를 봉안하고 있다.
  • 제목
    유암서원(流巖書院)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유암서원은 안동군 와룡면 주하리에 자리하고 있다. 1761년(영조 37) 북후면 도진리와 와룡면 주하리 경계에 있는 ‘유암’ 위에 지방 사림들이 뜻을 모아 이정백을 기리기 위해 서원을 세웠다. 1786년(정조 10) 주촌의 합계 가로 옮겨 세웠다가 이듬해 훼철되었다. 그 뒤 1946년 사림들이 뜻을 모아 다시 세웠는데 매년 3월에 향사하고 있다. 책을 찍던 목판을 소장하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존덕사, 강당, 전사청, 신문 등이 있다. 존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이정백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강당은 정면 4 칸, 측면 3칸 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그밖에 신문과 전사청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이정백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임진왜란 때 김해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싸웠던 선비이다.
  • 제목
    청주정씨 죽헌고택(淸州鄭氏 竹軒古宅)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안동시에서 예안으로 가다가 안동소주홍보관에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작은 고개를 넘어 조금 내려가면 정두 선생이 지어 딸에게 주었다는 선성 이씨 종가가 나온다. 이곳에서 한 번을 굽이돌아 조금 내려가면, 길 오른편에 산을 등지고 높게 자리 잡은 죽헌이 보인다. 죽헌은 청주 정씨 입향조인 정두 선생의 당호이다. 죽헌고택은 □자집과 집 뒤에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ㅁ자집은 맞배지붕을 연결한 기와집으로 산비탈을 깎아 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다시 기단을 만들어 조성한 것이다. 원래 집은 지금처럼 사당과 떨어져있지 않고 사당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길에서 집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어 길옆으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사당은 풍판이 있는 맞배지붕이며, 지붕의 하중을 받기 위해 전면 좌우의 처마 밑에 둥근 활주를 세웠다.
  • 제목
    역동우탁재사(易東禹倬齋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와룡에서 정산으로 나가는 길에 주진교를 넘어가다 보면 길가에 역동 우탁의 재사가 보인다. 나지막한 산기슭 위에는 역동 우탁의 묘소가 동남향으로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쪽에 남향으로 재사가 서 있다. 재사는 총 4칸 규모로 울타리 안에 동서 방향으로 지어져 있다. 남쪽으로부터 부엌, 방, 마루, 방의 차례로 자리 잡고 있으며 모두 세 영역으로 나뉜다. 공간은 口자 형상 둘을 이어붙인 형상이다. 동쪽의 口자 영역은 좀 크다. 서쪽의 口자 형상은 관리사인데 좀 작다. 그 중 큰 口자 영역은 본채가 있는 곳이다. 솟을대문이 양쪽으로 방을 거느리고 있다. 이 방의 좌우로는 높은 담장이 이어진다. 그리고 두 영역을 가르고 있는 건물은 사람들이 왔을 때 머무는 공간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 제목
    경체정(景?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경체정은 법전강씨(法田姜氏)의 강윤(姜潤)·강완(姜浣)·강한(姜瀚) 3형제를 추모하기 위해 강윤의 증손자인 유하(柳下) 강태중(姜泰重, 1778∼1862)이 강씨들이 대대로 살아온 마을 한쪽에 1858년 건립한 정자이다. 정자는 강씨들이 사는 속칭 음지마을 입구의 산자락에 북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으로 우선 겉으로 보기에도 아주 단정하고 멋진 정자이다. 정자 앞에 네모 형태[方形]의 연꽃 연못[蓮池]을 조성하였으나 현재 연이 자라고 있지는 않다. 정자 주위에는 회화나무를 중심으로 오래된 큰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정자의 고색을 받쳐 주고 있다.
  • 제목
    이오당(二吾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이오당(二吾堂)은 강흡(姜洽)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 건물은 강흡을 추모하기 위해 그가 돌아간 8년 후인 1679년에 후손들이 세웠고, 그 뒤 1938년 다시 고쳐지었다. 규모는 정면 2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이오당이라는 건물 이름은 ‘낙오천(樂吾天), 종오년(終吾年)’(나의 자연을 즐기다가 나의 생을 마친다.)라는 구절에서 두 개의 ‘오’(吾)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 제목
    창랑정사(滄浪精舍)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창랑정사는 두릉(杜陵) 이제겸(李濟兼, 1683~1742)이 이인좌의 반란에 무고로 연루되었다가 풀려난 후, 초야로 물러나 앉아 공부하고 수양하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건물은 길가 비탈 위에 서 있다. 비탈면의 중간을 밀고 들어가 작은 집을 지었으므로, 정자 영역 외의 공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지금은 길 아래에 바로 2차선 포장도로가 있다. 도로가 놓이기 전에는 계곡과 계곡 한쪽을 타고 나가는 오솔길이 전부였을 것이고, 그 때의 풍광은 그야말로 옥수가 흐르는 계곡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의 고적하고 미려한 미학을 유감없이 발현하는 것이었다.
  • 제목
    태백산 사고지(太白山史庫址)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태백산 사고지의 건물은 현재 모두 소실되고 남아 있지 않다. 1988년 8월에 발굴정비계획에 따라 건물의 유구를 발굴한 결과 태백산 사고지는 실록각(實錄閣), 선원각(璿源閣), 포쇄각(曝?閣), 근천관(近天館) 등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실록각은 중층으로 아래층이 정면 4칸 측면 4칸, 위층이 정면 2칸, 측면 2칸이며 선원각은 중층으로 아래층이 정면 4칸 측면 3칸, 위층이 정면 2칸, 측면 1칸이다.
  • 제목
    사미정(四未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사미정(四未亭)은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운곡천 상류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자이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경사진 대지 암반 위에 위치하는 사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촐한 정자이다. 정자가 자리한 이 지역 일대는 큰 바위와 암반 사이를 넘나들며 흐르는 맑은 냇물과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까지 가히 명승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이 일대를 사미정이라고도 한다. 사미정은 조덕린이 옥천산 아래 그의 집 뒤에 지었던 사미당을 해체하여 1730년대 중반 무렵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 제목
    창애정(滄厓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창애정은 이중광(李重光, 1709∼1778)이 지은 정자이다. 이중광은 1742년에 학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 정자를 건립하여 사람들과 학문을 토론하고 연구에 전념하면서 후배를 양성하였다. 이로 보아 이 건물을 지은 때는 1742~1778년 사이인 것으로 여겨진다. 정자의 지붕에는 ‘가경 육년 신유(嘉慶六年辛酉 : 1801년)’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있는데, 이때 중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이며, ㄱ자형 평면을 갖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 제목
    옥계정(玉溪亭)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옥계정은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졸내(拙川)에 자리하고 있다. 옥계(玉溪) 김명흠(金命欽, 1696∼1773)의 효행과 학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림과 후손들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 제목
    옥천서당(玉川書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옥천서당은 작고 단아한 건물이다. 서당이라고 하지만 정자라고 말하는 것이 어울릴 정도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의성김씨 일문이 스스로 공부하고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옥천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건물은 산기슭의 사면을 문지르고 들어가서 자연석을 섞어쌓기 하여 터를 닦고 그 위에 건립되었다. 건물의 오른쪽 부분에는 정면 1칸, 측면 2칸의 통방이 있고, 왼쪽 끝 1칸은 앞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마루를 두고 뒤에 정면 1칸, 측면 1칸의 방을 두었다.
  • 제목
    송월재(松月齋)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송월재는 이시선이 지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서재이다. 가운데 칸이 대청이고 양 옆 칸이 대청인 정자의 형태를 취한 건물이다. 앞 열 반 칸은 마루이다. 삼면에 퇴를 둘렀는데, 앞면의 퇴는 계자난간을 두었다. 기단은 현재는 시멘트로 고쳐 놓았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건물은 작은 산등성이 사이 조그맣고 펑퍼짐한 골짜기 입구에 자리 잡았다. 작은 도랑이 건물 옆을 흘러서 전체적으로 우거진 풀과 함께 눅눅한 느낌을 준다. 최근 인근의 봉화법전강씨종택과 함께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 제목
    애일당(愛日堂)
    제작연도
    2007-10-30
    해제
    애일당은 효자 금홍달(琴弘達, 1633∼1704)이 봉화읍 법전면 풍정리 아현 마을에 지은 정자이다. 앞면 3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을 두었다. 정자 앞에는 아주 너른 연못이 있어 연꽃이 가득하고 오른쪽 측면은 산언덕에 기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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