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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간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약산의 삶을 재조명하다

약산 김원봉 평전

제목
약산 김원봉 평전
저자
김삼웅 저
발행처
시대의창
발행년도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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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

제품소개

『약산 김원봉 평전』은 약산 김원봉을 심도 있게 다룬 평전다운 최초의 평전으로 저자가 30여 년간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의열단 창단의 의의, 집필 배경, 조선의용대 창설과 한국광복군에 합류하게 된 동기, 월북과 그의 의문의 죽음 등 역사적인 사실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재조명하고자 했다.

저자소개

김삼웅
정치평론가이다. <민주전선> <평민신문> <민주신문> 등 진보적인 매체에서 오랫동안 일했고, 일간지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에서 주필로도 활동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고,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단재 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를 비롯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 자문위원, 《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도 맡았다.



저서로《친일정치 100년사》《곡필로 본 해방 50년》《한국 필화사》《위서》《금서》《한국현대사바로잡기》《을사늑약 1905》《통일론 수난사》《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종교, 근대의 길을 묻다》《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단재 신채호 평전》《백범 김구 평전》《심산 김창숙 평전》《녹두 전봉준 평전》《안중근 평전》《약산 김원봉 평전》《장준하 평전》《죽산 조봉암 평전》등이 있다.

수록내용

‘떡잎’부터 남다른 어린 시절, 폭렬투쟁의 의열단 창단, 황포군관학교 입교 전후, 민족혁명당 총서기에 취임, 광복의 깃발 들고 27년만에 환국, 단정 반대와 월북 그리고 의문의 죽음 등과 함께 32면의 화보 수록

- 화보
- 일러두기
- 책머리에
- 제 1 장 ‘떡잎’부터 남다른 어린 시절
- 체 게바라와 호세 리잘
- ‘그림자’같은 사나이
- 밀양에서 열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 망국소년이 된 김원봉
- 전홍표 교장과 평생동지 윤세주 만나
- 독립운동가의 묘판, 밀양
- 평생 동지들 만나 의기투합하다
- 제 2 장 조국독립의 꿈을 그리며
- 무장투쟁의 꿈을 안고 중국으로 망명
- 파리강화회의에 자객 보내
- 비폭력 3.1운동 소식 듣고 실망
- 무장부대 대신 폭렬투쟁론 정립
- 신흥무관학교 입교, 폭탄제조법 배워
- 제 3 장 폭렬투쟁의 의열단 창단
- ‘의열단’이라는 고유명사
- 혈연적 운명공동체‘의열단’
- “놀라울 정도로 멋진 친구들”
- 제 4 장 식민통치 기관을 파괴하라
- 폭렬투쟁에 생명 걸어
- 부산경찰서 폭파 작전
- 밀양경찰서 폭파 작전
- 조선총독부 폭파 작전
- 자금 조달과 폭탄 반입의 어려움
- 아나키즘에 매료되기도
- 아나키스트 유자명과의 만남
- 의열단, 임시정부와는 거리를 두다
- 소련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 지원받아
- 일본 육군대장 처단 시도
- 단재 신채호의 <의열단선언>
- <의열단선언>은 어떤 내용인가
- 의열단 총회를 통해 결의 다짐
- ‘불멸의 문헌’에 대한 역사적 평가
- 제 5 장 황포군관학교 입교 전후
- 의열단의 시련과 세력 확장
- 임시정부에 실망한 세력 의열단 가담
- 의열투쟁자금 마련에 고심
- 김지섭의 이중교 투탄 의거
- 확고한 민족주의 신념
- 황포군관학교에 입교
- 유오한국혁명동지회 결성
- 군관학교에서 얻은 인적 자산
- 김성숙의 김원봉 회고담
- 제 6 장 중국혁명전선에 서다
- 의열단 개조운동
- 조선민족혁명당으로 발전
- 무창혁명청년회 결성
- 장개석의 북벌에 참전
- 살육의 현장을 뒤로하고 상해로
- 남창봉기에 직접 뛰어들어
- 광주봉기에는 참가하지 않아
- 시련을 딛고 독립운동의 중심으로 발돋움
- 제 7 장 독립운동진영 통합운동에 앞장서다
- 공산주의 이론가 안광천과의 만남
- 상해에서 새 활로 모색
- 대표자대회 열어 강령·슬로건 채택
- 창립 9주년과 3.1운동 10주년 성명
- 레닌주의정치학교 개설
- 사회주의사상에 깊이 빠져들어
- 제 8 장 독립군 전사들의 용광로 조선혁명간부학교
- 세계 대공황과 파시즘 체제
-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우기까지
- ‘남의사’통해 중국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 받아
- 황포군관학교 동기생들의 협력
- 남경 교외 탕산에 훈련소 개설
- 조선혁명간부학교 운영에 열정을 바쳐
- 치열한 혁명계급론 분석
- 백범 김구의 격려 방문
- 졸업생들, 특수임무 띠고 적 후방으로
- 혁명음악가 정율성 배출
- 독립운동진영의 지도자로 우뚝 서다
- “왜노 몰아내는 조선독립 역군이 돼라”
- 제 9 장 사랑과 혁명의 합주곡
- 북경에서 만난 여성 혁명가 박차정
- 젊은 혁명가들의 사랑과 조국해방투쟁
- 노신과 허광평의 사랑과 혁명운동
- 남경조선부녀회 조직, 운영 지도
- 불꽃처럼 살다간 소피아 코발렙스카야처럼
- 제 10 장 민족혁명당 총서기에 취임
- 국제정세의 변화를 지켜보며 통합정당을 지도
- 단일대당 운동에 임시정부는 불참
- 민족·민주혁명이념 제시
- 당권 장악했으나 이청천 계열 이탈
- 《민족혁명당보》발행에 심혈을 기울여
- 민족혁명당 창당의‘실천적 의의’
- 중일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
- 제 11 장 조선의용대 창설, 총대장이 되다
- 중일전쟁, 한국독립 절호의 기회
- 조선의용대 창설
- 기독청년회관에서 결성식 가져
- 의용대원들의 회고
- 핵심대원들로 의용대 편제
- 일본인 반전운동가들과 연계투쟁
- 한국광복군 창설에 자극제 역할
- 강도 일본을 타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
- 기관지《조선의용대통신》발행
- 후방지역 전지공작에 투입
- 중국 문인 곽말약과 김성숙의 회고
- 의용대원 김학철의 회고
- 의용대원 유자명의 회고
-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 결성
- 제 12 장 조선의용대의 활동과 화북이동 전후
- 조선의용대의 선전공작과 유격전
- “모든 반일 역량을 단결시키자”
- 다양한 대적선전활동 전개
- 일제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
- 일본 반전단체의 축하 메시지
- 조선의용대의 미래 활동 지침
- 조선의용대 주력 화북으로 이동
- 중국공산당, 김원봉의 화북행 차단
- 중국인 사마로의 증언
- “망명자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해”
- <연안송>을 지은 정율성은 조선의용대원
- 제 13 장 임시정부 군무부장에 취임
- 국권침탈기 무력항전의 전통
- 한국광복군의 결성과 성격
- 한국광복군의 역할과 사명
- 제 14 장 좌절과 민족해방의 중경 시절
- 잔류대원을 이끌고 중경으로 이동
- 장개석 정부의 통합 압력
- 임시정부에 참여하기까지의 좌우 갈등
- “배운 것 적어도 도량 큰 인물”
- 소절에 구애받지 않는 혁명가의 풍모
- 이미정부에서 소외당해
- 3.1 소년단장 최동선과 재혼
- 제 15 장 광복의 깃발 들고 27년만에 환국
- 일제 패망의 날, 중경
- 제2진으로 12월 초 환국
- 일제 패망과 조국독립의 의미
- 환국 순위 양보
- 소용돌이치는 정국의 한복판에서
- 비상국민회의 탈퇴 선언
- 임시정부와 결별, 민전의장 맡아
- 28년만의 귀향, 대대적인 환영받아
- 친일경찰에 붙잡혀 수모 당해
- 3일간 통곡, 그 눈물의 사연
- 친일파들이 활개치는 기막힌‘해방조국’
- 이현상의 글, <혈투의 30여 성상>
- 제 16 장 단정 반대와 월북 그리고 의문의 죽음
- 일관된 통일정부수립 노선
- 테러위협으로 인한 긴장된 생활
- 4월 9일 북한으로 가다
- 월북 동기와 배경
- 북한정권수립에 기여, 국가검열상 취임
- 월북, 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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