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열정려기병명
충신의사 권공복흥
열부 서산류씨 정려기 병명
경주에 의협심이 있고 절의를 지키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은 권씨요 휘는 복흥이라 하드라, 젊어서는 발병으로 행보가 불량하셨다. 만력으로 임진년(1592)의 난에 창의하여 창을 잡고 전쟁터에 나아가 순국하셨다. 그의 아내 류씨께서 달려가 시신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고 이에 고인의 저고리로 혼을 불러서 돌아와 빈소를 차리고 통곡하면서 가족과 친척에게 말하되 “남편은 전쟁터에서 순국하고 그 시신조차 읽어 버리니, 이는 모두 나의 죄로다.” 어찌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이런 일이 있을까! “장부 따라 이제 죽거든, 남편의 혼령 곁에 함께 묻어주시오” 하고 곧 입을 닫고 절식한 지, 아흐레 만에 운명하셨다. 관찰사가 그 일을 나라에 상고하여 그의 남편과 함께 서로 앞뒤로 충신과 열려 문을 정표하셨다. 풍산 홍량호 정려 명을 지어 가로대
사람이 큰 인륜이 있음은 부부와 군신이 아닌가! 신하가 나라를 위해서 죽으면 곧 인을 이루었다고 말 하내 여기 한 장부가 계시온데 불편한 다리로 참전하셨다가 순국하셨고 아내가 남편 따라 한 몸 돌보지 않고 순절하셨네! 살아서 시신 얻지 못했지만, 그 영혼 따라 한 무덤에 모셔졌고 삼강가운데 이강을 얻은 건 또한 열부가 계셨도다. 경주의 들판과 동해의 물가에 오직 충신과 열녀로서 붉은 쌍 문이 빛나는구나! 바람 불고 비 내려 쓸쓸하니 나는 새도 슬피 울고 산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으며 별같이 빛나고 해같이 밝도다. 나라사람은 꾸러 앉아 절을 하고 어진임금은 충신과 열녀에 정문을 세우도록 명했도다. 향기로운 명예가 몇 천 년이 흘러도 전해지도록 태사(홍양호)가 정려 명을 짓다.
숭록대부 원임 이조판서 겸 판의금부사 지 경연사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 춘추관 성균관사 홍양호 근찬